글꼴 디자이너, 노은유

노타입의 대표이자 산돌의 글꼴 디자이너 노은유 동문을 인터뷰했습니다. 노은유 동문은 연구자이자 작업자인 디자이너로, 한글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여러 글꼴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활자에 인상을 입히고 확장하는 글꼴 디자인 세계와 글꼴 디자이너의 작업 이야기를 노은유 동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노은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글꼴 디자이너 노은유입니다. 2018년부터 글꼴 디자인 스튜디오 ‘노타입(Nohtype)’을 운영하고 있고 작년 2월부터 산돌에서 타입 디자인 그룹의 그룹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투잡러로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중인데, 노타입은 조금 느리게 운영 중이며 현재 회사에 많이 집중하고 있습니다.

노은유 님의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시각디자인과 재학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재학시절에는 다재다능한 동기들을 만나서,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반드시 독특한 사람만 디자이너가 되는 건 아니지만, 당시에 대학을 잘못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다른 친구들 작업 보면 너무 잘한 거예요. 제 작업은 초라하고 아이디어도 일반적인 느낌이었죠. 어느 날은 길을 가다가, 교정에 스스로 땅을 파고 들어가서 얼굴을 내밀고 말 거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어요. 물론 다른 과 학생이었지만⋯ 상상 이상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1학년 타이포그래피(1) 수업을 들으면서 타이포그래피가 좋아졌던 것 같아요. 연구년이었던 안상수 선생님 대신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오신 한재준 선생님께서 수업을 진행하셨어요. 한글의 역사부터 짚어주시는 수업 방식과 분위기 등 마음이 편안해지는 수업이었죠. 타이포그래피(2) 수업은 안상수 선생님께 들었는데, 선생님 특유의 카리스마와 창의적인 디자인 아이디어에 반해서 타이포그래피에 더 빠져들었어요. 그때는 교수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글꼴 디자이너를 진로로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다른 디자인 분야의 진로는 생각해 보신 적 없는지 궁금합니다.

1학년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진로가 결정된 건 아니었어요. 4학년이 되어서야 확실히 타이포그래피와 북디자인에 관심이 있었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지 하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습니다. 졸업 전시 작업을 구상했을 때 서체 관련된 아이디어가 나와 서체로 졸업 전시를 하게 됐어요. 결국 자연스럽게 글꼴 디자이너로 이어지게 된 것 같고요.

여러 디자인 수업을 들으면서 하나씩 느꼈던 것들이 있어요. ‘나는 여기에 소질이 없구나’ 혹은 ‘나한테 잘 맞지 않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타이포그래피나 편집디자인 수업을 들으면 그냥 좋았어요. 제 성향과 잘 맞는 데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확신을 점점 찾아갔어요. 영원히 남는 걸 만드는 기분, 그게 좋았습니다. 디자인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빠르게 유행을 타고 소비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저는 손이 느려서 디자인할 때 많은 시간이 드는데, 순식간에 소비되고 남은 게 없어지는 것이 허무했죠. 반면에 책을 만들면 그 책은 늘 있는 거예요. 제가 떠나더라도 출판한 책은 남게 되고. 서체도 비슷하게 몇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한글꼴연구회’에서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노은유 님이 활동하던 당시의 한글꼴연구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대학 생활에서 가장 몰입했던 활동이 한글꼴연구회였는데, 거기서 글꼴을 처음 만들었어요. 당시 석재원, 구자은 선배님을 비롯해 여러 선배님이 있었어요. 폰토그래퍼(Fontographer)*나 매킨토시(Macintosh)*도 알려주시고, 지금은 쓰지 않는 옛날 프로그램도 알려주셨어요. 주로 세벌체를 만들었어요. ‘우리는 세벌체를 만드는 모임이야.’ 이런 정체성이 있었거든요. 〈안상수체〉라는 상징적인 세벌체를 만드신 지도 교수 안상수 선생님의 뜻이기도 했죠. 세벌체가 한글의 원리인 초성∙중성∙종성을 잘 표현한 데다 가장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제작 방식이기도 했거든요. 제작한 폰트를 컴퓨터에 설치해서 입력되는 게 진짜 마술처럼 느껴져서, 무척이나 뿌듯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과 비슷하게 봄과 가을에 전시를 진행했어요. 가을에는 대학교 타이포그래피 연합 전시 《한울전》을 했죠. 선배들과 교류하고 전시에 제 작업을 거는 첫 경험이었어요. 게다가 타 학교와 교류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한울전》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 만나서 ‘타이포그래피 수업이 이렇더라’와 같은 이런저런 얘기도 했죠. 당시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글꼴 만드는 학교가 거의 없었어요. 홍익대학교와 한재준 선생님이 계셨던 서울여자대학교 이렇게 두 학교밖에 없어서 다들 부러워한 기억이 납니다.

* 폰토그래퍼(Fontographer): 글꼴 제작 프로그램.

* 매킨토시(Macintosh):  애플이 디자인, 개발, 판매하는 개인용 컴퓨터의 제품 이름.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예술학교(Royal Academy of Art, The Hague)에서 라틴디자인을 수학하게 된 계기와 다니던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는 느린 편인데다 멀티태스킹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한글이라는 한 우물만 파겠다’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겁도 많고 두려움도 있어서 유학은 꿈도 안 꿨어요. 그런데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에서 해외, 디자이너와 협업할 일이 종종 생겼어요.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 프로젝트에서는 피터 베르휠(Peter Verheul) 디자이너, 삼성전자 스마트TV 서체를 만들 때는 프레드 스메이어스(Fred Smeijers) 디자이너와 일을 했어요. 만나서 교류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때는 영어도 부족하고 라틴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니까 서로 얘기할 게 별로 없는 거예요. 늦었지만 유학을 가서 라틴디자인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두 디자이너 전부 다 헤이그에서 강의하시는 분이었어요. 운명처럼 헤이그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헤이그 왕립예술학교는 워크숍과 작업 중심의 학교라서 수업을 듣기보다 모여서 다 같이 작업하는 분위기였어요. 교실에 각자 개인용 책상이 있는데, 자기 자리에서 그리고 만들고 하는 수업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타입 쿠커(Type Cooker)’ 수업에서는 ‘볼드(Bold)’나 ‘와이드(Wide)’와 같은 레시피를 주고, 이에 맞춰서 글자를 그렸어요. 영어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가 걱정됐는데, 지금까지 했던 것과 비슷한 작업이라 눈으로 따라가며 잘 적응을 해나갔던 것 같습니다. 신기한 건 같은 과의 12명이 각각 다른 나라 사람이었어요. 헤이그에서도 특이한 사례였다고 하더라고요. 12개국의 디자이너가 모여서 투덕투덕하거나 으샤으샤 하면서 글자를 만들곤 했습니다.

헤이그 왕립예술학교 졸업 작품 〈옵티크〉 작업

노은유 님의 이력 중 홍익대학교 안상수 랩 연구원에서 애플 한글 서체 리서치를 진행하셨던 것이 인상깊어요. 당시 어떤 작업을 진행하셨는지 궁금해요.

박사 과정 중에 안상수 선생님의 연구실 날개집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아이폰이 한국에 처음으로 출시됐어요. 그런데 아이폰의 한글 서체가 별로라며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거예요. 애플 본사에서 이런 반응에 충격을 받고 한글 서체를 바꾸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안상수 선생님께서 처음에는 아이폰용 한글 서체를 직접 만들자고 하셨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우리 측에서 리서치를 통해 어울리는 서체를 제안하자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이렇게 아이폰 본문용으로 적합한 모던한 서체를 추천하기 위해 저를 비롯한 몇몇 박사 연구원들이 나서서 애플 한글 서체 리서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답니다.

당시 애플에서는 최정호 선생님이 그린 글자들의 원도를 사진 식자기로 인쇄해 따라 그려 만들어진 SM 계열 서체를 제품에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최정호 선생님이 살아 계시던 시대에는 인쇄 기계의 성능이 엄청나게 뛰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원도의 획 끝이 약간 두꺼워지거나 돌기를 붙이는 등의 특징이 있었어요. 그걸 따라 그린 SM 계열 서체들도 이와 같은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요. 그래서 SM 계열 서체가 해상도 높은 아이폰 화면에서 노이즈로 보이는 부분이 있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라고 느꼈던 거였죠. SM 계열 서체는 좋은 서체지만 아이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결론을 토대로, 리서치 프로젝트팀에서 해상도 높은 화면에서도 현대적으로 보일 수 있는 화면용 서체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여러 회사로부터 서체를 받아 보고, 가독성을 판가름한 뒤 애플에 한글 서체 추천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냈습니다. 보고서를 토대로 이후 아이폰에 새롭게 탑재된 서체가 산돌의 〈Sandoll 고딕 Neo〉였고, 현재는 〈Apple SD 산돌고딕 Neo〉가 시스템 기본 한글 서체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활자공간의 글꼴 디자이너로 일하시면서 모바일 글꼴뿐만 아니라 웹 글꼴 TV 자막 글꼴까지 제작하신 이력이 있어요. 각 글꼴을 제작할 때, 매체 별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셨나요?

각각의 용도에 딱 맞는 맞춤형 글꼴을 제작하고자 노력했어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우선 활자공간에서 제작했던 웹 글꼴은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웹 글꼴과 다른 싸이월드용 웹 글꼴이었어요. 도토리로 구매하는, 도트를 찍어서 만드는 귀여운 글꼴 말이에요. 따라서 싸이월드용 웹 글꼴을 제작할 때는 이 글꼴을 사용하는 대상이 누구일지, 싸이월드라는 공간적 특징을 살리려면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 지 등을 고민했어요. 리서치를 해보니 도토리로 글꼴을 구매하는 사람은 대부분 10대에서 20대였고, 이들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해 글꼴을 귀엽게 디자인했어요. 또 TV 자막 글꼴은 많은 글자들이 화면의 하단부에 배치돼야 했어요. 따라서 폭이 좁은 장체의 글꼴을 그리되 속공간도 큼직큼직하게 두려고 했었죠.

결국 좋은 글꼴은 용도에 잘 맞춰 디자인된 글꼴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글꼴이 모든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런 글꼴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최정호 선생님의 역사적인 서체가 아이폰 화면에서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떤 글꼴이라도 용도나 상황에 맞춰 최적화가 잘 돼야 해요. 글꼴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계속 진화해야 하는 존재인 거죠.

활자공간, 안상수 랩 연구원,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를 거쳐 노타입(Nohtype) 글꼴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드셨어요. 본인만의 글꼴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제가 네덜란드의 헤이그 왕립예술학교에 다니던 때로 돌아가야겠네요. 저는 〈옵티크〉를 졸업작품으로 헤이그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했어요. 졸업 후에는 비자를 연장받고 〈옵티크〉를 발전시키며 미래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여기 보이는 간판은 제가 배운 ‘레터 카빙(Letter Carving)’을 활용해 만든 거예요. 대리석에 스케치하고, 도구를 사용해 돌을 깎아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걸 만들면서 한국에 가면 꼭 노타입을 만들고 사업자 등록증을 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글꼴 디자인 스튜디오’ Nohtype’ 간판

노은유 님께서는 졸업 전시에서 출발한 〈소리체〉부터 〈옵티크체〉,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 글꼴〉, 네이버의 〈마루부리〉 등 많은 작업을 진행하셨어요. 이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작업과 그 이유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은 아리따 서체 작업이에요. 아모레퍼시픽의 기업 글꼴로도 잘 알려져 있죠. 아리따 서체를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갔어요. 그래서 저한테도 더욱 특별하게 기억되고, 애정이 많기도 합니다.

아리따는 제가 메인 디자이너로 참여한 작업은 아니에요. 활자공간의 글꼴 디자이너로 일할 때 이용제 디자이너님이 〈아리따 돋움〉 서체를 만드셨어요. 어깨 너머로 아리따 돋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고, 글자가족 파생에 참여를 했습니다. AG 타이포그라피 연구소로 이직한 후에는 제가 〈아리따 부리〉 서체 작업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게 되었고, 안상수 선생님과 한재준 선생님이 지도와 감수를 맡아주셨어요. 또 저한테는 한글꼴연구회 선배인 류양희 디자이너님이 아리따 부리 디자이너로 계셨습니다. 라틴 서체는 스튜디오 둠바의 미셸 드 보어 그리고 헤이그 왕립예술학교의 선생님이셨던 피터 베르휠 디자이너가, 중국어 서체는 한이(汉仪)라는 중국 회사가 작업을 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담당자였던 ‘최나영’님은 이후 신세계백화점 서체를 만들 때 다시 만나기도 했고요. 다음 담당자이자 현재 담당자인 ‘강유선’님은 홍대 동문으로 이어온 인연이 아리따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리따는 새로운 도전을 많이했던 프로젝트에요. ‘명조’나 ‘바탕’ 대신 ‘부리’라는 이름을 글꼴 이름으로서 처음 붙였고요. 당시 한글 헤어라인 서체가 없었는데, 아리따 헤어라인을 글자가족으로 만들었고, 고정 너비가 주류인 한글 본문용 폰트에서 비례 너비*를 처음으로 시도하는 등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 비례 너비: 글자에서 유닛에 따라 너비가 변화하는 글자. 가변폭이라고도 함.

〈아리따 부리〉 서체 작업 과정

박사 학위 논문과 더불어 최정호 디자이너에 관한 책을 집필하셨어요. 최정호 디자이너를 연구하게 된 계기와 더불어 연구할 때의 일화를 듣고 싶어요.

박사 시절, 명조체와 관련된 주제로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와 관련해 안상수 선생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선생님께서 “명조체에 관해 논하려면 최정호 선생님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때부터 최정호 선생님에 대해 자세히 연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애플 한글 서체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SM 계열 서체가 최정호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이 마음이 더욱 커졌고요.

그런데 학위 논문 작성을 위해 최정호 선생님에 대해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자료가 너무 없어서 선생님이 베일에 싸인 전설의 존재 같다고 생각되는 거예요. 이분에 대한 자료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막막함과 두려움도 생겼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 일단 최정호 선생님의 원도를 찾아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원도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국내에 원도가 없다는 말도 들었고요. 제가 산돌 대표님까지 찾아가 봤는데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죠.

그러다 최정호 선생님께서 모리사와(モリサワ), 샤켄(shaken)이라는 일본의 두 사진 식자기 회사에 필요한 한글 글꼴을 그려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후 원도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일본으로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물론 선배들에게 제 계획을 얘기했을 땐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귀한 원도를 아무에게나 보여줄 리가 없다고 하면서요. 사실 저도 막막한 마음이 컸죠. 이때 문뜩 포카리스웨트 서체를 디자인하고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 교수님이 생각났어요. 제가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있을 때 교수님과 친분이 있어서, 교수님께서 일본에 가신 후로도 종종 찾아뵀었거든요. 모리사와와 샤켄 회사를 방문해 그곳의 디자이너들과 교류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 토리노우미 오사무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토리노우미 선생님은 애플 제품의 일본어 서체로 사용되는 히라기노(Hiragino)를 만드신, 일본에서 존경받는 디자이너예요. 아무튼 토리노우미 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이분이 모리사와에 전화해서 잘 말씀해 주신 덕에 드디어 최정호 선생님의 원도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방문해 원도를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말로만 듣던 온도와 습도 조절이 되는, 돌려서 여는 금고에서 원도를 꺼내 보여주시는 거예요. 자기들도 이 원도를 보관만 했지 외부인을 위해서 처음으로 공개한다면서요. 제가 원도를 연구에 사용해도 되냐고 여쭤보니 직접 스캔도 다 해주시고, 정말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덕분에 박사 논문을 잘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 정말 겁이 없었던 것 같네요.

최정호 원도: 모리사와 중명조

우리말에 없는 외국어의 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한글 디자인 프로젝트인 〈소리체〉 작업이 인상적이었어요. 소리체의 기획 배경과 출시 과정이 궁금합니다.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하던 시절  ‘つ[tsu]’라는 글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 ‘つ’가 ‘쯔’라고 읽히는 것도 아니고 ‘츠’나 ‘스'라고 읽히는 것도 아니고, 그 중간의 애매한 소리로 발음되는데, 현재 있는 한글로는 ‘つ’를 제대로 표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つ’를 어떻게 하면 한글로 표기할 수 있을지 하는 궁금증에서 소리체가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음성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굉장히 계획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했잖아요. 따라서 저도 가획의 원리나 합용의 원리와 같은 세종대왕의 제자 원리를 따라가다 보면 현대에 필요한 새로운 글자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울대 언어학과에 청강을 가기도 했고, 교수님께 자문도 많이 구했습니다. 헬무트 교수님께도 찾아가 독일어의 특이한 발음을 배우기도 했어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소리 나는 기관이 같으면 그 모글자에서 획을 더하거나 합용 해 글자를 만드는,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소리체를 제작했습니다.

드디어 소리체가 탄생했는데, 문제는 타이핑할 수 있도록 제작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어요. 키보드에 새로운 글자를 추가할 수가 없으니 실제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초기 소리체는 포스터를 만들고, 전시하고, 논문 쓰고, 즉 컨셉만 가진 프로젝트로 마무리됐어요. 그런데, 나중에 오픈타입폰트의 멀티 글리프(multiple glyphs)/대체 글리프(Alternate Glyphs)*라는 기능이 생기면서 소리체 출시를 할 수 있었어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어도비 등 특정 프로그램에서만 작동한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요.

저는 글자가 계속 변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예전엔 쓰이던 글자가 지금은 안 쓰이기도 하고, 새롭게 탄생한 글자들도 있어요. 나중에 한글도 더 많은 소리를 일상적으로 써야 할 필요가 생긴다면 새로운 글자가 추가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시대가 온다면 타이핑되는 ‘つ’를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언젠가 맥북 자판에서 소리체를 발견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재미있게 작업했습니다.

*멀티 글리프(multiple glyphs)/대체 글리프(Alternate Glyphs): 일반 스타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은 선택을 제공하기 위해 서체 디자이너가 여러 개의 옵션을 만들어서 제공할 수 있는 기능.

〈소리체〉 새한글 자모

전체적인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서체 제작에서 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제가 현재 일하고 있는 산돌의 경우를 예로 들면 좋을 것 같은데요. 진행해야 할 프로젝트가 생기면 프로젝트 매니저(PM)가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이후 프로토타입, 프로덕트, 퍼블리싱 세 단계로 나누어져요.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디자인을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스케치를 합니다. 이때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PM이 디자이너 3~4명 정도를 모아 함께 프로젝트에 뛰어듭니다. 여러 명의 아이디어와 스케치를 가지고 프로토타입의 시안을 만들면,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시안을 보여주고 ‘어떤 방향성이 이 서체에 어울리겠다.’ 같은 것들을 정해서 프로토타입을 하나로 완성하죠.

프로토타입을 완성한 후, 프로덕트 단계로 넘어갑니다. 프로덕트는 글자 파생이라고 보시면 돼요. 서체의 전체 세트를 각 규격에 맞게 파생하는, 손목이 몹시 아픈 단계랍니다. 더 많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디자이너 1~2명이 프로덕트를 진행합니다. PM이 할 때도 있고, 시안에서 선정된 사람이 할 때도 있고, 혹은 그때그때 손이 비는 사람이 할 때도 있어요. 이렇게 담당 디자이너가 있더라도 PM이 계속 전체적인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두 사람 이상이 글자 파생을 할 때 자기 개성이 너무 두드러지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하나의 서체를 서로 다르게 만들면 안 되니까요. 중간중간 진행 현황을 점검하면서 서체가 일관성을 갖고 완성도 있게 잘 제작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PM의 역할이죠.

이 과정이 끝나면 퍼블리싱 단계가 있어요. 이제 엔지니어한테 디자인 파일을 넘깁니다. 엔지니어도 할 일이 상당히 많아요. 글꼴을 구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기능을 넣을 수도 있고, 프로그램이나 운영체제마다 글꼴을 읽어내는 방법이 달라 네이밍을 잘 해줘야 해요. OTF나 TTF, WOFF 파일을 만들어내는 작업도 한두 달 정도 걸려요. 윈도우와 맥 OS 운영체제 모두에서 서체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 포토샵에서도 사용 가능한지 이런 것들을 체크해 서체 제작을 완성합니다.

이런 단계로 협업했을 때 서체 제작의 속도가 더 빨라요. 한 사람이 전부 진행하지 않고 업무를 나눠 각자 더 전문성을 가진 분야에 집중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PM이 잘 조율하면 일관성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 서체를 제작하는 독립 디자이너의 경우는 서체 한 벌을 제작하는 데 조금 더 많은 시간이 들죠. 제 개인 작업은 보통 1년에서 길게는 2년까지 걸려요. 손이 빠른 분들은 더 빠르게 작업할 수도 있지만, 그런 분들도 6개월 이하로 서체 한 벌을 제작하기는 대부분 어려운 것 같고요. 또 스스로 하기 어려운 퍼블리싱은 외주를 맡기기도 하는데,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파이썬을 다룰 줄 아는 디자이너들은 퍼블리싱까지도 스스로 하기는 하지만요. 협업할 때는 엔지니어가 따로 있어 퍼블리싱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체를 제작할 때의 감수 및 수정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주변 디자이너들에게 제 작업을 자주 보여줘요. 자기 작업은 혼자 잡고 있다 보면 판단이 잘 안 설 때가 많아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어떤지 의견을 듣죠. 결국 글꼴 제작은 나의 작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누군가 써야 하는 거잖아요. 다수를 위한 것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또, 아주 오래 진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자기 눈에 너무 익숙해지면 뭐가 좋고 나쁜지 안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런 단점을 보완하고자 일부러 묵혀두기도 해요. 일주일 정도 안 보다 다시 열면 ‘왜 이렇게 그렸지?’ 하면서 재빨리 고치게 되죠. 이런 과정 없이 그대로 가면 점점 이게 괜찮은지 아닌지 모르겠더라고요. 작업을 자주 보여줘서 여러 사람의 눈을 거치고 같이 감수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감수 과정에서 제가 앞으로 조금 더 하고 싶은 것은 사용자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에요. 서체는 하나를 제작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한 번 완성해 놓으면 그 뒤에는 수정이 쉽지 않잖아요. 체험판 서체를 내고 피드백을 많이 받아서 반영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올해 제가 참여해서 만들고 있는 서체는 그렇게 한번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느껴질 때가 있으시다면, 언제일까요?

아무래도 시간 싸움에서죠. 한글은 워낙 글자 수가 많아서 모든 글자를 완성도 있게 그리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감수만 해도 진짜 눈이 아프거든요. 가끔 오타도 발견하고요. 회사에 와서는 프로그램으로 자동 오타 검수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요. 서체라는 게 한번 제작하면 오래도록 남아 쓰이는 것은 맞지만, 또 특정 시기에 잘 어울리는 서체를 기획했다면 그 시기에 발맞춰 빠르게 출시해야 하잖아요. 그럴 때 더욱 시간 싸움을 느끼곤 하죠. 그렇다 보니 빠르게 서체를 만들 수 있는 기술 개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네요.

또, 가끔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끌고 가야 하는 점도 어렵게 느껴져요. 하던 것 말고, 새것을 만들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서체 디자인을 하려면 인내심도 중요하거든요. ‘서체 디자이너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진득하게 앉아서 오랫동안 하나의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지구력이 있어야 한답니다. 예를 들면, 한 작업을 1년 동안 지속해야 하는데 2개월 후에 싫증이 나서 다른 걸 하고 싶으면 서체 작업이 성향에 안 맞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나의 프로젝트에 쉽게 질리는 성향을 보인다면 서체 디자인을 하기 힘든 것 같아요. 서체 제작은 아무리 짧아도 반년 동안은 같은 프로젝트를 끌고 가야 하기에 굉장히 끈기 있게 견딜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저도 아직 옵티크체를 아직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했다는 무거운 마음을 갖고, ‘올해는 서체를 출시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주말마다 한 글자씩 만들고 있죠.

그 밖에 더 잘하고 싶은 부분은 사용자와의 소통이에요. 예를 들면, 옵티크는 디스플레이(제목)용 서체로 얇은 선을 다룬 것이어서 서체 크기를 작게 사용하기보다는 크게 사용하는 것을 권장해요. 그런데 사용하시는 분들이 옵티크를 아주 작게 사용할 때면 가끔 ‘이 크기는 안 되는데⋯!’ 이럴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제가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 사용자와 더 잘 소통하고 제작 의도를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대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 강의를 진행하시고, 서체를 만들어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입문서인 『글립스 타입 디자인』을 집필하셨어요. 글꼴 디자인 교육자로서 추구하시는 글꼴 디자인 교육의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2008년부터 홍익대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당시에는 타이포그래피 선생님 중에서 글꼴 디자이너가 많지 않았어요. 수업 시간에 글꼴 만드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젊을 때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강의는 어려워요. 조금 웃기지만 제가 학생들을 잘 재우거든요. 글꼴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더 재밌고 흥미롭게 알려줘야 하는데 어렵게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아요. 늘 더 쉽고 재밌게 접근하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수업하면서 교육 활동은 꾸준히 하고 싶어요.

또, 요즘은 다양한 성향의 글꼴 디자이너들도 나오고 있잖아요. 굉장히 재밌는 글꼴을 만들어내는, 톡톡 튀고 발랄한 디자이너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큰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도 그동안 얻었던 지식을 나누면서 이런 기쁨을 느끼고 싶습니다.

글꼴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분야라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에 이 직업을 골랐을 때 가족들조차 제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혼란스러워했거든요. 지금도 이해하고 계시는지 걱정이 될 정도인데요. 앞서 얘기했지만 자기의 성향에 잘 맞는다면 어떤 것보다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글꼴을 한번 만들어보시고, 즐거움이 있다는 생각이 드시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도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한글은 잘못 그리면 안 된다는 인식으로 한글을 그리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했지만, 최근에는 레터링이 유행하면서 정말 자유롭게 한글을 가지고 놀잖아요. 이처럼 글꼴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한글 사용자로서, 한글을 즐겁게 많이 탐구해보면 좋겠어요. 글꼴을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은 자기 작업에 굉장히 강력한 정체성이 되기도 합니다.

노은유 님의 작업이 가진 강점 혹은 자신만의 무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 제가 ‘연구자’이자 ‘작업자’인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뭔가를 시작할 때 계기가 꼭 필요한 사람이고 연구가 꼭 필요한 사람이거든요. 공부하다가, 혹은 어떤 특정 계기를 통해 하나의 주제를 파고들며 디자인을 시작하는 편입니다.

언젠가 누가 제게 “연구자가 될 거냐, 작업자가 될 거냐?”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고를 수 없었어요. 제가 하는 작업은 연구와 작업, 둘 다 진행돼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연구와 작업 두 가지를 함께하는 욕심을 부리고 있기는 하지만 이 둘을 같이 해서 그게 저만의 강점이자 무기가 된 것 같네요. 제 작업에도 두 가지 과정이 모두 잘 녹아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속도는 좀 느리지만 저는 앞으로도 연구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며 저만의 것들을 찾아나갈 거예요.

노은유 님의 작업은 글자의 기능을 확장하고 가능성을 탐구하고 계신 것처럼 보여요. 글꼴을 디자인할 때 추구하시는 글자와 글꼴의 기능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앞서 말했듯 저는 연구자이자 작업자인 디자이너이기를 지향해요. 그래서 글자의 형태적 새로움보다는 개념과 기능에 더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기후위기 폰트는 빙하가 녹는 모양을 표현해서 기후 위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되게 좋아서 한글 버전을 만들게 되었답니다.이처럼 저는 연구와 작업을 통해 개념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글꼴을 추구해요.

〈기후 위기 폰트: 한글-빙하체〉

노은유 님에게 ‘글자’란 무엇인가요?

한글도 매력적이지만, 알고 나면 세상의 모든 글자가 다 재밌어요. 글자는 단순히 형태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항상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고, 사람들의 영혼을 담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저는 글자라는 것 자체는 ‘보물 상자’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들여다보고 탐구해서 열어볼 때마다 보석 같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게 저의 디자인의 아이디어가 되는 것 같아요.

현시점에서 노은유 님의 다음 목표 및 꿈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산돌의 타입디자인 그룹의 그룹장과 노타입의 대표, 두 가지로 나눠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산돌’에서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폰트 기술 개발’과 ‘대형 글꼴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예요. 한글 글꼴을 제작하는 환경과 사용하는 환경은 모두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먼저 제작하는 환경에서 조금 더 면밀하게 연구하고 표준화해야 할 규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규칙이 정리되면 폰트 관련 기술 개발도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AI에 모두 관심이 많지만 폰트 기술의 기초적인 정리를 인간이 해 놓아야 그것을 레퍼런스로 삼아 AI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디자이너들도 기술의 도움을 받아 더욱 활발하게 글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는 사용자들에게도 분명히 더 완성도 높은 폰트를 쓸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좋은 결과물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노타입’으로서는 느린 속도라도 꾸준히 흥미롭고 새로운 작업을 하려고 하고요. 1년에 하나씩이라도 글꼴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이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안상수, 한재준, 이용제 선생님의 『한글디자인교과서』의 공동 집필자로서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어요. 홍대 타이포그라피 수업에서 제가 배운 스승님들이 쓰신 교과서에 제가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영광스럽습니다. 열심히 업데이트 중이니 새로운 개정판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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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노은유 프로필 사진 © 노은유 | 헤이그 왕립예술학교 졸업 작품 〈옵티크〉 작업 © 노은유 | 글꼴 디자인 스튜디오 ‘Nohtype’ 간판 © 노은유 | 〈아리따 부리〉 서체 작업 과정 © 노은유 | 최정호 원도: 모리사와 중명조 © 노은유 | 〈소리체〉 새한글 자모 © 노은유 | 〈기후 위기 폰트: 한글-빙하체〉 © 노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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