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디자이너, 정성훈

쿠팡이츠의 프로덕트 디자이너 정성훈 동문을 인터뷰했습니다. 정성훈 동문은 학부 졸업 후 삼성전자부터 페이스북, 쿠팡이츠까지 국내와 해외를 넘나들며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활동해 왔습니다. 오랜 시간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쌓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정성훈 동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정성훈

안녕하세요, 정성훈 님! 반갑습니다. ⟨홍익시디 소식지⟩ 구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시각디자인과 01학번 정성훈입니다. 저는 졸업 후 바로 삼성전자의 Visual Display 사업부로 입사해 스마트 TV를 디자인하다, SK플래닛으로 옮겨 디지털 제품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해 LeEco와 NIO라는 스타트업에서 각각 1년 정도 근무했어요. 이후 페이스북의 Growth 팀에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현재는 쿠팡 이츠의 Marchant UX 팀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성훈 님의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시각디자인과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학교 수업 중에는 타이포그래피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기초 디자인 수업이 많았고, 따라서 디자인하는 데 있어 토대가 되는 내용을 많이 배웠죠. 그중 하나가 타이포그래피 수업이었어요. 그때 배운 것을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기도 하고, 디자이너로서 저의 강한 무기를 많이 얻었다고 생각해 기억에 남아요. 지금은 안 계시겠지만 안상수 교수님께서 저희 수업부터 저학년 수업까지도 맡아서 진행하셨는데, 당시 수업 내용, 교수님의 카리스마, 그리고 다른 학부생이나 선배들이 청강하려고 뒤에서 수업을 들었던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제 동기들과는 뉴미디어 디자인 영역에 도전하며 재밌는 대학 시절을 보냈어요. 같이 했던 것 중 하나가 간단한 웹디자인 아르바이트였는데,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학비도 대고 생활비도 내면서 살았어요.

이후 여름방학 인턴으로 모토로라 코리아 디자인 스튜디오서 일하게 됐는데, 인하우스 디자인 스튜디오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또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에 지원해서 합격했는데, 1년여 정도 활동하며 삼성전자 일도 같이했어요. 삼성전자 제품을 인턴이 직접적으로 디자인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개발자 위주로 운영되는 기술연구소에서 간단한 디자인을 했죠. 기술력은 충분하지만, 디자인이 아직 적용되지 않은 제품들이 많았거든요. 상용화할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기술의 방향을 보여줄 수 있는 단계까지 디자인했었어요.

대학 시절, 진로를 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IT 업계에 종사하고자 하셨나요?

저 같은 경우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진로 방향성을 정하게 되었어요. 군 제대 후 복학한 지 며칠도 안 된, 아직 디자인이 어색했던 시기에 학과사무실 도우미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조교님과 안면이 있는 선배님들이 찾아오셨어요. 이노이즈라는, 삼성전자를 클라이언트로 하는 디자인 에이전시를 운영하시는 분들이었죠. 이분들께 지나가는 말로 일을 시켜달라 했더니 선뜻 일을 시켜주셨어요. 그곳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삼성전자 제품과 웹사이트, 프로토타입 등을 접했어요. 아마 이때부터 제 디자인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일 때 어떤 디자인을 하고자 하셨나요? 현재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 때와 지금의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변함없이 상호작용 할 수 있는 디자인이에요. 웹사이트 디자인도 일종의 뉴미디어 디자인 혹은 인터랙션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서, 관련된 많은 기술도 익히고 경험도 쌓았어요. 재학시절 이제 막 시작된 뉴미디어 관련 수업을 듣기도 했고요. UX 디자인 혹은 프로덕트 디자인에서는 사용자와 디자인 간의 꾸준한 상호작용이 있잖아요. 저는 디자인이 사용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혹은 반대로 사용자의 반응을 통해 디자인이 개선되어 가는 과정을 무척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학부생 시절에도 같은 맥락이었죠. 디자인이 단순히 전달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피드백을 얻고 개선해 나가는 디자인을 추구했어요.

학부 시절의 활동이나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먼저 자신에게 맞는 디자인 분야가 뭔지,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맞는 디자인 분야를 찾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분야를 시도해 보고 아니다 싶은 것들은 쳐내는 작업이 필요해요. 또 돈을 버는 디자이너, 자신의 사상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디자이너 등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아트웍이 조금 약했어요. 일러스트레이션 등 여러 시도는 해봤는데 잘 안됐고요. ‘이 분야는 나보다 더 훌륭한 친구들의 할 일이구나’를 깨달았죠. 또 저는 돈을 많이 버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당시 돈을 가장 많이 벌고 일자리가 풍부했던 곳이 UX 디자인과 웹사이트 디자인이어서 이 분야를 선택했기도 했어요.

페이스북 재직 당시
페이스북에서 동료들과의 협업

마케팅팀 혹은 개발팀과 협업을 하며 얻게 된 인사이트 혹은 기억에 남는 협업 경험이 있으신가요?

뛰어난 개발자들과의 협업이 기억에 남아요. 개발자들은 프로덕트의 기능이나 작동 원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고, 또 생각보다 디자인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기능과 UX 플로우 등이 훌륭할 때가 많거든요. 그런 아이디어들을 반영해서 디자인을 개선했던 일이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하나의 예로,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근무할 때 개발자와 소통했던 사례를 말씀드릴게요. 당시 저희 팀은 페이스북의 보이스 포스팅 기능을 만들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었어요. 페이스북에 사진이나 텍스트만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쓰기 어려운 사람들까지 고려해 목소리를 녹음 및 포스팅할 수 있게 만들자는 취지였죠. 이런 기능을 논의하고 헤어졌는데, 며칠 뒤에 팀 개발자가 그 기능을 구현했다며 저를 불렀어요. 논의 단계에만 있었던 기능을 개발하고, 인터랙션도 어느 정도 완료하고, 제게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게 자기가 개발한 것에 대한 디자인을 서포트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이렇게 뛰어난 개발자들이 디자이너들보다 먼저 자발적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내고, 앞서나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신선한 협업 경험이었습니다.

협업 과정에서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타협할 때는 디자이너가 심미적인 부분의 개선이 사용성과 비즈니스적인 성공에 어느 정도 임팩트가 낼 수 있는지 답할 수 있는 상태여야 성공적인 타협이 가능해요. 예를 들자면, 디자이너들이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아이콘을 심미적인 관점에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이런 주장을 PM이나 개발자들은 대부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아이콘을 바꾼다고 저희 비즈니스가 잘 될까요?”라고 거절하는 경우가 다수예요. 그러면 디자이너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제시한 디자인 개선점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버려요.

하지만 이럴 때 디자이너들이 “이 아이콘을 바꾸면 몇 퍼센트의 클릭률이 올라갈 수 있고, 클릭률이 올라가면 해당 기능에 대한 컨버전*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혹은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이 데이터를 보세요, 여기 아이콘을 변경한 사례가 있는데, 이에 따라 사용성과 목표로 하는 지표가 개선되었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져요. 성공적인 타협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꾸준히 자료나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고, 이 자료나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협할 때도 상대방에게 제시할 줄 알아야 해요. 디자이너의 리더십과 아우라를 기르는 것도 필요해요.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필요한 디자인 전략 수립,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거든요.

*컨버전 : 기업의 목표 행위를 고객이 달성함.

과거와 현재의 협업 방식에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전에, 삼성전자에서 일했을 때는 개발팀, 디자인팀, 마케팅팀이 따로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팀과 협업이 필요할 때 제가 직접 말하지 못하고, 매니저가 해당 팀으로 찾아가 전달하곤 했어요. 즉 디자인팀에도 실무자와 매니저가 별개로 존재하고, 마케팅팀에도 실무자와 매니저가 별개로 존재했던 것이죠. 이런 방식이다 보니 소통 과정에서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도 하고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고요.그런데 요즘은 애자일 조직* 방식을 채택하는 IT 회사들이 많아져 마케팅 팀원, 개발 팀원, 디자인 팀원, 그리고 심지어 데이터 애널리틱스* 같은 사람들까지 모여 여러 직군의 사람들이 한 팀으로 일을 해요. 따라서 최근에는 팀대 팀으로 협업이 필요할 때 옆자리 쳐다보면서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라고 직접 물어보는 식이에요. 이런 부분들이 과거와 다른 협업 방식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애자일 조직 : 부서간 경계를 허물고 필요에 맞게 소규모 팀을 구성해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문화.

*애널리틱스 : 데이터 또는 통계의 체계적인 분석을 의미하는 단어로, 유의미한 패턴의 발견, 해석,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됨.

학부 시절의 디자인과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하는 디자인의 차이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질문에 답하기 전에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시작할게요.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사용자가 존재하는 디자인이에요. 누군가에게 디자인을 보여주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적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학부 시절에 했던 디자인들은 그런 목적이 생기기 힘들어요. 어떤 가상의 문제를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가 디자인을 통해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진짜로 해결됐는지 사용자한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기 어려워요. 그래서 학부생 때 하는 디자인은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들일 가능성이 높아요.

반면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은 본질적으로 프로덕트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문제가 어떤 식으로 발생했는지, 왜 그런 문제가 생기는지 등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내 구현해요. 이후 사용자들이 프로덕트를 사용하고 나면 사용에 기반한 데이터가 계산되고, 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그 문제로부터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고 구현하는 프로세스를 거쳐요. 이런 프로세스로 보건대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하는 디자인은 제가 생각하는 본질적인 디자인을 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성훈 님께서 생각하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지녀야 할 태도나 자질이 있을까요?

요즘은 회사마다 기업 문화가 다 달라서 이런 유동적인 환경에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디자이너라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굳이 궁합이 맞지 않는 회사에 가서 기업 문화에 맞춰 자신을 바꾸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사에 적응하고 자신의 성향을 조금 맞출 수는 있겠지만, 너무 궁합이 안 맞으면 그 회사를 관두고 자기에게 맞는 기업 문화를 가진 다른 회사로 가면 되니까요. 따라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를 일반화해서 지녀야 할 태도나 자질에 관해 얘기하는 건 어려울 것 같고, 보통 디자이너가 가져야 하는 자질들을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자기만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고,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이런 점들이 중요할 듯해요.

과거와 비교하여 현재의 기업 분위기나 문화가 많이 바뀐 것을 체감하실 것 같은데, 직장 내 디자이너의 역할이나 업무에도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요.

대표적으로 체감되는 건 연봉이에요. 옛날에, 삼성전자에서 일할 때는 디자인 팀이 개발팀 밑에 있었던 적도 있고, 마케팅팀 밑에 있었던 적도 있고, 항상 디자인 팀이 다른 팀 밑에 서브 조직으로 존재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IT회사의 팀들이 직군별로 나뉘기보다는 한 팀 내에 마케터, 개발자, 디자이너가 한꺼번에 존재해요. 이렇게 팀 구조가 바뀌다 보니 옛날에는 기획자와 개발자가 디자이너보다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았지만, 요즘에는 디자이너랑 기획자, 개발자가 거의 비슷한 연봉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에요.

Jio Phone 프로젝트
Jio Phone 프로젝트 필드 리서치 과정

가장 성장에 도움이 된 프로젝트가 있다면 하나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페이스북에서 했던 Jio Phone 프로젝트를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전체 프로덕트 관점으로 봤을 때 일부분을 다루는 다른 프로젝트들에 비해 Jio Phone 프로젝트는 관여하는 범위가 매우 넓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페이스북에 합류한 지 반년 정도 지난 무렵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함께하게 돼서 문제 정의와 필드 리서치, 디자인 워크숍, A/B테스트와 출시까지 전체 과정을 만들어 갈 수 있었기에 매우 인상적이었죠. 또 Jio Phone 프로젝트는 제 역량을 키울 좋은 기회였어요. 저는 시각디자인과 출신이고, 그래픽이나 비주얼을 디자인하는 데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인을 넘어 초기 기획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전체 프로덕트에 영향을 미치는 디자이너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업무에 도움 되는 감각을 키우려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요?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일단 제품을 많이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에요. 경쟁사의 제품들을 봐야 하고, 그 제품들도 아무 제품이나 보는 게 아니라 잘 디자인된 제품들을 봐야 해요.

저도 지금 디자인하고 있는 제품의 경쟁 제품들을 정말 많이 봅니다. 그리고 진짜 많이 본다는 것은 그냥 빠르게 넘겨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주 면밀히 살피는 것을 의미해요. 우리 제품의 어떤 디자인 요소를 해결하려고 하면 경쟁 제품에도 있는 그 디자인 요소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죠. 이렇게 봐야 경쟁 제품을 만들 때 고민했던 지점들을 더 깊이 깨닫게 되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거든요.

특히 디자인을 분석하거나 벤치마킹할 때는 프로덕트의 모든 플로우를 체크하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어 기본적인 플로우만 사용해 보고 ‘카카오뱅크 한번 써봤는데 좋은 것 같아, 디자인 잘 된 것 같아.’라고 하면 안 되는 거죠. 훨씬 더 세심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모든 스크린샷을 다 찍고 한 페이지에 놓은 후 전체 플로우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부터 확인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플로우들이 어떤 식으로 추가되고 바뀌어가면서 만들어지는지 등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플로우들과 피처들이 가지는 맥락을 분류해서 자신만의 코멘트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아카이빙을 해야 해요. 이 과정을 거쳐야 '제품의 디자인을 분석했다' 혹은 '벤치마킹했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정성훈 님께서 생각하시는 ‘성공한 디자인’이란 어떤 것일까요?

저는 디자인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분기의 사업적 지표를 얼마만큼 달성하겠다거나 특정 페이지의 어떠한 탐색률을 얼마만큼 높이겠다는 목적들 말이에요. 그래야 이 목표에 맞춰서 디자인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단지 비즈니스적 목적에 부합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한 디자인은 아니고요. 디자인이 기본적으로 디자인 원칙을 지키고 있어야 하고, 사용성도 뒷받침되어야 하고, 사용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도 있어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겠죠.

제가 자주 했던 실수 중 하나가 ‘나는 디자이너니까 무조건 이 사용자를 만족시키겠어.’라며 사용자를 전적으로 위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방향으로 진행한 디자인이 성공한 디자인이 아닐 때가 아주 많더라고요. 좀 강하게 표현하자면, 사용자들은 생각보다 이기적이어서 비즈니스의 목적과 사용자의 목적이 부딪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어요. 사용자들에게 어떤 것을 제공했을 때 사용자들은 행복해지는 데 반해 비즈니스적으로는 손해라면, 디자이너는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 그 사용성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해요. 디자인의 기본을 갖추고, 비즈니스적 목표를 우선시하며 전체적인 성공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강연에서 말씀하셨던 비즈니스 관점에서 수치에 집중하면서 작업하는 디자인 업무란 어떤 것인지 자세한 설명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어떤 디자인이든, 즉 편집 디자인이든 포스터 디자인이든 제품 디자인이든 디자인을 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발생해요. 그런데 발생할 결과를 예상하고 디자인하는 것과 예상하지 않고 디자인하는 것은 차이가 커요. 예를 들어 영화를 만드는데 ‘어떤 주제로 어떤 관객에게 이런 스토리텔링을 할 거고, 이번 시즌 총관객 수는 얼마 정도 될 거야!’라고 예상하고 영화를 만드는 것과 ‘그냥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거든요. 저는 어떤 디자인을 하든 본인이 만든 디자인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목표를 설정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고, 이에 맞추어 디자인하고, 결과를 계속 트래킹해서 디자인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주니어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볼 때 가장 많이 느꼈던 게 시각적으로는 너무나도 매력적인데 거기에 따른 목표 데이터나, 어떤 결과가 없다는 점이었어요. 결괏값이 없는 디자인은 실무에서는 무용한 디자인이 될 확률이 높거든요. 그래서 아쉬웠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의 디자이너들도 다 동일한 생각을 할 거예요. 프로덕트 디자인은 한 번 완성하면 끝, 이렇지 않아요. 어떤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그 디자인이 적용된 프로덕트가 없어질 때까지 반복 수정을 하거든요. 그래서 예전 강연에서도 더더욱 데이터가 중요하다, 수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얘기했었던 것 같습니다.

정성훈 님께서 졸업하실 때는 신생 분야에 속했던 UI 분야가 그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는데, 전망은 어떨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현재 UI 디자인의 퀄리티가 상향 평준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이제 많은 디자이너가 UI를 제법 그럴싸하게 뽑아내고 있죠. UI 가이드라인이 워낙 꼼꼼하게 잘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것을 지키기만 해도 기본적인 디자인 완성도는 충족이 되거든요. 그게 UI 가이드라인을 만든 목표였기도 하고요.

그런데 가이드라인도 한번 만들어진 것으로 끝이 아니라 계속 발전하고 바뀌어요. 새로운 테마들도 추가가 되고요. 예를 들면 다크 모드나 새로 나온 인터랙션 같은 것들이요. 별 게 아닌 것 같아도 거기에 들어가는 디자인 리소스가 엄청나요. 이렇게 UI 지식이 고도화되는 만큼, 더 미세하고 더 세분화된 디자인의 차이가 제품의 성패를 가르게 됩니다.

또 예전에는 UI 상의 접근성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다가 요즘에는 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현재 UI에서 수정, 추가해야 할 부분이 많기도 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디자인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거나 오디오 음성을 넣는다든지, 접근성을 위한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필요로 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UI 분야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UI 디자인 실무에서는 ‘완료된 상태, 끝’을 어떻게 규정하는 걸까요?

우선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UI 디자인의 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품이 존재하는 이상 여러 실험과 그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자인은 계속 변경이 될 수밖에 없어요. 또 제품의 사용자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결국 그에 맞춰 디자인을 바꿔주어야 하고요.

예를 들어 볼게요. 페이스북에서는 사용자가 계정을 생성하려 할 때 이름, 이메일 주소, 성별, 생년월일 등 6가지 질문을 하는 페이지가 있어요. 그 페이지는 아직도 담당 팀이 주기적으로 UI 디자인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팀이 UI를 개선할 때마다 더 좋은 데이터 결과가 나타나요. 사용성을 고려해 버튼의 배치를 바꾼다든가 텍스트의 크기를 키운다든가, 다양한 디자인적 시도를 했을 때 전체적인 계정 생성률이 높아졌다는 것이죠. 언젠가 이 페이지도 완벽한 UI 디자인이 나오고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완벽한 디자인은 아직 안 나온 거예요. 이렇게 단순한 페이지조차 UI 디자인을 개선할수록 사용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UI 디자인에 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NIO 재직 당시 프로젝트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가요?

국내 대기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어요. 자발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의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러다 ‘해외에 있는 스타트업에 가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해외 경험도 하고, 스타트업에서 일도 하고, 이렇게 도전하는 의미에서 무작정 관심 있는 수십 개의 해외 스타트업에 지원했어요. 그리고 당시 미국 LA에 있는 패션 체인 기업 Forever 21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LeEco 두 곳에서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을 했어요. 합격 이후 둘 중 어느 곳에 갈지 고민하다 이왕이면 디지털 시대에 맞는 회사가 좋다고 생각해서 LeEco로 가게 되었고요. 또 LeEco에서 1년 정도 일한 후에는 NIO라는 스타트업에서 다시 1년 정도 일을 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결과적으로 실리콘밸리 빅테크에서 좋은 커리어 패스를 쌓을 수 있었어요.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셨을 때 적응 및 근무하는 것에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제일 큰 차이는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근로에 대한 보장이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은 법적으로 근로를 보장해 주지만, 미국은 근로가 보장되지 않는 조직문화예요. 회사에서 잘리면 그날 바로 짐 싸고 나와야 해요. 실제로 저도 제가 첫 번째로 근무했던 회사에서 해고당해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박스 들고 나가는 경험을 해봤어요. 그런 근로 환경이나 조직 문화가 다르니까,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도 좋은 점도 있긴 해요. 오늘 내가 회사에서 잘렸더라도 갑자기 길바닥에 나앉지 않고, 2~3개월 정도의 월급을 준다거나 그동안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게 보장해 주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복지 제도들이 있었어요.

또 많은 분들이 그러셨듯이 저 또한 언어적 장벽을 크게 느꼈는데요, 따라서 제 발표 전에 30분 분량의 대본을 만들어 모두 외우고 예상 질문을 미리 준비하는 등의 노력을 했었어요. 실제로 페이스북의 제 매니저가 저를 뽑은 후 제게 와서 1년 안에 언어 문제를 해결하라고 이야기했던 적도 있고요. 하지만 너무 낙심하지는 않아도 된답니다. 디자이너에게는 시각성이라는 큰 무기가 있으니까요. 단순히 언어로만 디자인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시각적으로 디자인을 설명할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부족한 언어 문제가 해결됐던 적도 많았어요.

최근에 다시 국내로 커리어를 옮기셨는데, 국내/해외 디자이너로 활동하시면서 생활면이나 직장 문화 등 전반적으로 느낀 차이점이 있을까요?

해외에 오래 있다 보니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그곳에서 나의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여유도 생겼어요. 그런데 한국의 디자인 업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죠.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얼마나 좋아졌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여러 가지 배운 것들과 연구한 방법론을 한국의 디자인 업계에도 적용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러다가 좋은 기회로 한국으로 돌아와서 쿠팡 이츠로 직장을 옮기게 됐어요. 조직 문화도 그렇고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이곳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방식으로 업무를 하더라고요. 외국 사람들도 많아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적응하기도, 미국에서 배운 것들을 적용하기도 쉬웠어요. 하지만 여전히 한국 회사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중요한 의사결정을 갑작스럽게 탑다운으로 처리하는 측면 같은 것이죠. 탑다운 방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실무자가 직접 의사결정을 하거나 결정권에 힘이 생기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차이로, 야근 문화를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실리콘밸리에서도 사람들이 야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한국과는 야근의 분위기가 달라요. 한국의 기업에서의 야근은 ‘이걸 왜 하는 거지?’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반면 해외 기업에서는 내가 야근을 하고 싶어서 했었습니다. 퇴근 후에 집에서 새벽 1~2시까지 야근을 하다 보면 회사 메신저에 온라인 상태인 사람들이 되게 많았어요. 야근 수당을 주는것도 아닌데 말이죠. 저 또한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졌던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야근을 했을 때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제가 하는 프레젠테이션의 주장이 훨씬 더 단단해졌기에 야근을 자발적으로 많이 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정성훈 님의 다음 목표 및 꿈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디자인 조직의 총책임자가 되는 것이 제 목표예요. 쿠팡 혹은 다른 디자인 조직의 리더가 되어 팀의 성장을 이끌고 디자인팀만의 문화를 구축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유연하면서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를 만들어 어떤 어려운 문제든지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는 디자인 조직을 꾸리는 것이 제 목표이자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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