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이너 오혜진
배움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나가는 그래픽 디자이너 오혜진 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번 9월호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이라는 폭넓은 분야를 다루며, 단순 작업 방식과 기법에 대한 내용을 넘어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배움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상과 본인의 작업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고 이해하고자 하며, 그 과정 속 파생되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오혜진 디자이너의 작업관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오혜진입니다.
오혜진 님의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대학 시절 때는 사실 별생각이 없었어요. 처음엔 만화를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려고 그래픽 디자인과를 갔어요. 제 컴퓨터를 처음으로 갖게 된 건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는데, 그때가 가정용 컴퓨터가 활발히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거든요. 지금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만지지만 디지털 기기가 일상이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인터넷으로 만화를 보는 도구로만 컴퓨터를 사용했어요. 그러다 보니 디자인이라는 말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이 디자인과에 들어온 거예요. 그래픽 디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고, 컴퓨터로 하면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죠. 보통 디자인을 할 때 항상 그림을 먼저 그렸고, 거기에 적당히 괜찮은 서체로 제목을 넣는 것이 디자인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시각디자인과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수업이 타이포그래피 수업이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수업이었나요?
안병학 선생님 수업이었는데, 제가 이 수업을 엄청 좋아했어요. 서체 리스트에서 하나씩 골라서 그 서체에 대한 리서치를 해서 책을 만드는 수업이었어요. 요즘은 사용하는 서체의 폭이 넓지만, 그때는 유니버스, 헬베티카 외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그런 기본적인 서체를 반드시 써야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그 수업을 통해 글자에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Award360°*의 올해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하셨는데요. 어떻게 중국의 디자인 어워드와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또한 작업에 관한 내용도 자세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Award360°는 2019년부터 시작된 시상식이고, 중국 디자이너와 외국 디자이너가 매해 번갈아 가며 아이덴티티를 맡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슬기와 민 선생님이 하신 적도 있고, 타카다 유이라는 일본의 디자이너분이 하신 적도 있습니다. 이번에 저한테 연락이 와서 작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을 의뢰할 때 필요한 것들에 대한 리스트가 옵니다. 리스트를 쭉 보다 보니, 인쇄되는 포스터 외에는 다 온라인 이미지였고 대부분 무빙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어요. 우리가 포스터를 접하는 매체가 모바일 위주로 변하다 보니, 움직임이 가능한 매체에 따라 포스터에 무빙이 들어가게 되었죠. 무빙 포스터에서는 글자들이나 그래픽 요소들이 움직이며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근데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무빙 포스터에 접근해 보고 싶었어요. 무빙 이미지를 만드는 게 익숙하지 않은 면이 있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저는 정지된 인쇄물을 많이 만들어 왔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에 대해 고민했어요.
사실 요즘에는 대부분 다 모바일로 보잖아요. 데스크탑보다도 모바일, 특히 소셜 미디어로 이 홍보물들을 보게 되죠. 릴스나 유튜브, 틱톡 이런 것들도 다 어떻게 보면 무빙이 들어간 어떤 결과물인 거잖아요. 그래서 한편으로 무빙 포스터와 소셜 미디어의 콘텐츠 사이의 경계가 조금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다 움직이는 이미지이고, 그것을 감상하는 매체도 동일하기 때문에, 이 흐려진 경계에 대해 역으로 활용하고자 했어요.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으로 포스터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출퇴근길에 핸드폰으로 열심히 영상들을 촬영했어요. Award360°의 360도가 담고 있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각도의 360도도 있지만, 다양한 관점이라는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고 다방면이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죠. 원형의 물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혹은 회전의 움직임을 상징할 수도 있고, 이렇듯 굉장히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최대한 여러 가지를 촬영했어요. 원형의 사물, 회전하는 움직임, 혹은 깜빡거리는 불빛 등을 기록해서 그것들을 마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만드는 것처럼 무빙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근데 자칫 잘못하면 필름 어워드 포스터같이 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든 생각이, 영화 앞에 참여한 사람, 배우 이름, 제목 이렇게 트레일러가 나오는 것도 오히려 무빙 포스터와 같다고 느꼈어요.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매체 간 경계가 점점 더 흐리게 느껴졌어요. 전 그런 지점들이 되게 재밌었거든요. 특히 책이 이런 부분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 같은데, 책은 그냥 읽히는 것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의 도구로 쓰이기도 하고, 공간 설치를 위한 사물로 쓰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어떤 미디어나 매체가 전통적인 형태만으로 존재하지 않고, 뒤틀어 쓰는 양상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Award360° : 중국의 디자인 어워드로, 매년 100개의 우수한 디자인 작품을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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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음악 큐레이션 청취 공간인 Tilt의 브랜딩 작업을 하셨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접근하셨을지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푸하하하 프렌즈(FHHH friends)라는 건축 사무소가 Tilt가 있는 건물 자체를 설계했어요. 지하에 생기는 공간의 그래픽 디자인을 맡을 사람으로 제가 소개를 받았고, 다주로(Dajuro)라는 공간·가구 디자인하는 팀이랑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픽 디자인이 공간에 들어갈 때, 포장지나 스티커처럼 들어가는 것보다 공간 자체에 개입되는 형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주로(Dajuro) 팀과 아이디어나 방향성 회의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고, 마침 사무실도 제 작업실에서 가까워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계속 만나면서 6개월 정도 작업을 했어요. 그래픽은 그래픽대로, 가구는 가구대로 각각 컨셉을 따로 가진다면 서로 다른 세계관이 하나의 공간 안에 어울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고자 리서치부터 실질적인 형태 도출까지 함께 진행했습니다.
‘Tilt’라는 단어가 기울어진 각도를 뜻하거든요. 스피커의 설치 각도에 따라 음향의 방향이 달라지는데, 이것을 ‘틸트한다’고 말해요. 공간 이름인 Tilt도 여기서 왔고, 이 공간에서는 대중적인 음악이 아니라 노이즈 사운드나 비주류 음악을 틀거든요. 여기에서도 평범함을 조금 벗어나 있는 스탠스가 기울어져 있다는 의미와 연결점이 있어 보이는 거예요. 수평 수직에서 약간 기울어지면 그 사이에 틈이나 균열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노이즈 사운드와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기울어진 선들을 모티브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를테면 이 공간을 디귿자로 두르는 벤치가 있었는데, 벤치의 등받이를 틸트 시켜서 약간 기울어지게 만든다든지, 통로 바닥에 타일을 깔 때도 타일을 조금씩 교차하는 방식의 레이아웃을 했어요. 입구 문에 거치대를 설치할 때도 수평 수직에 딱 맞추지 않고 사선으로 기울어진 선들을 넣었어요.
로고도 정해진 비율이 없이 상황에 따라서 늘리거나 줄이는 등 자유롭게 쓰도록 만들어서, 이것으로 모빌을 만들어서 공간 곳곳에 달아두기도 했죠. 리플렛의 레이아웃도 텍스트 박스의 각도를 비틀고, 글로시 매거진이라고 기존에 있는 서체를 아이덴티티에 맞게 커스텀해서 조판을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인상 깊은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에 11월에 평창에서 열리는 공연이 있어요. 저는 공연에 들어가는 비주얼을 만들고 있는데, 영상 매체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시간의 흐름을 가진 사운드와 호응하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정지된 이미지여도 보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무빙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사람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한눈에 다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점을 이동하면서 보게 되거든요. Award360° 때의 작업처럼 오히려 내가 가진 핸디캡을 이런 경우에 색다르게 대입해서 풀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정지된 이미지이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흐름을 음악의 틀에서 어떻게 운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작업인데 엄청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마다 자기복제와 편함을 피하고 내용에 맞는 형식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 있나요?
사실 ‘다르게 한다’라는 것이 갑자기 완전히 달라지는 것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태도나 방법에서 조금씩 변주를 한다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처음에 작업을 시작할 때 방법이든, 기법이든, 내용이든 그것과 관련된 리서치를 하는 것을 좋아해요. 예를 들면, Tilt 작업을 할 때도 노이즈 사운드 자체, 혹은 틈이 균열을 일으킨다는 말도 했었잖아요. 근데 그 균열의 개념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여러 가지 파생되는 개념들이 많거든요. 어떤 실질적인 장소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장소인 비장소라는 개념이 있을 수 있죠.
그런 여러 가지 것들에서 파생되는 어떤 단어, 개념, 기법, 태도, 방법 등 이런 것들을 찾는 것을 제가 되게 좋아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여러 방법이나 상상을 좀 해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보여줘야 하는데 책 보다가 일주일이 다 가버리거든요. 그래서 요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다 보니 이게 조금 고민이에요.
리서치에 시간을 많이 쓰시고, 특히 텍스트 기반의 리서치를 많이 하시는데 그러한 리서치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평소에도 취미가 독서예요. 그런데 책에서 나오는 어떤 인용이나, 작품, 혹은 작가에 대한 것들이 꼬리 물기식으로 엮어지면서 책을 읽거든요. 아까 말했던 음악 공연에 대한 예시를 들면, 공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성’이 중요한 키워드예요. 평소에 소리를 전시하는 것에 대한 책이나 공연을 하는 음악가들이 시간성에 대해 쓴 책을 읽었던 것들이 서로 엮어지면서 생각이 만들어질 때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작업을 받은 시점부터 딱 리서치를 시작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평소에 알고 있던 여러 가지 파편들이 기억나며 그것들을 엮어내면서 추가적으로 알아가는 내용들도 생기고 세계관이 만들어지는 거죠.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읽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 평소에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아카이빙을 하다 보면 무언가를 봤을 때 자연스럽게 엮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과정을 명확하게 단계적으로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이미지라는 시각적인 매체를 읽는 것과 텍스트를 읽는 것 사이에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유용한 바보들(l'idiot utile)』이라는 저널이 있는데, 유베르 크라비에르라는 사진 찍는 친구랑 같이 만들고 있는 책이 있어요. 유베르가 일정 기간 동안 사진을 찍으면 제가 그걸 가지고 책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 같이하고 있어요. 작가가 여러 사진 시리즈를 찍으면 시리즈별로 폴더에 파일을 넣어서 전달해 줍니다. 그럼 거기에는 아무런 목차도 없고 셀렉도 없어요. 그냥 이미지만 담긴 20개의 폴더가 와요. 그때 책 안에 이미지들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가 저의 역할이거든요.
보통 책에는 목차가 정해져 있잖아요. 그리고 텍스트는 내용이 명확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텍스트를 다루는 책을 만들 때는 직접적으로 가이드가 있는 편이죠. 그런데 이미지 위주의 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들을 어떻게 나열할 것인지에 대해 두 가지 경우가 굉장히 다릅니다. 지금까지 총 2권의 책이 나왔는데 첫 번째 책은 시리즈별로 4페이지 8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계속 이미지를 나열했어요.
두 번째 책 같은 경우에는 다른 식으로 진행했는데, 책을 만들 때 보통 커다란 대지에다 페이지를 분산시켜서 인쇄한 다음에 이것을 접어서 만들거든요. 그래서 이 시리즈의 단위를 페이지로 하지 않고 전지로 했어요. 큰 전지 한 장에다 시리즈를 랜덤하게 얹는 거예요. 그다음에 전지를 접으면 책이 되었을 때의 순서는 전지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대로 나오는 거죠. 물론 일일이 페이지 번호를 써서 미리 접어보면 예상할 수는 있지만 처음에 대지 상태에서 이미지들을 얹힐 때 구체적인 결과물까지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닌 거죠. 감각에 의존해서 하는 작업이라 사진집 디자인이 재미있지만, 어려운 면도 크죠. 따라서 책은 작가의 작업이 아니고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작품이고, 작가의 작품은 내용이죠. 저는 사실 그렇게 생각해요.
리서치나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의 소통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배움이 있을 것 같은데, 학생들에게 ‘배움의 방향성’과 ‘배움의 태도’에 대해 조언해 주실 수 있나요?
타인과 같이 작업할 때 열린 마음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칫 작업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고집에 세질 수 있잖아요. 물론 그런 부분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사람과 일을 할 때는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하고, 그것들이 시너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고 그래야 좋은 작업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해요. 아이디어 회의할 때도 부족한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해 부정하고 막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좋은 얘기가 나오게 되거든요. 점점 이 프로젝트에 대한 사랑을 서로 만들어가는 것이 되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작업 결과물에 대해 완성이라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하셨는데, 하나의 작업이 발전되거나 다른 작업으로 이어지게 된 적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완성이라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이 말은 형태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조형적으로나 형태적으로는 완성도와 완결성을 어느 정도 느끼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고, 무엇을 만들든 그 과정에서 다음엔 이렇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드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는 오히려 한 작업에서 생기는 질문이나 생각이 다음 작업을 또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 세 가지 작업(『초과』 10호 , 『줄줄』,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이 서로 조금씩 이어져 있는 작업이에요. 『초과』 10호 같은 경우에는, 한영 시 번역가들의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에서 하나의 시를 14명의 번역가가 각자 번역을 하고 그것들을 엮은 진(zine)을 만들어요. 10호를 기념해서 저에게 각각의 번역가들의 글이 실린 책을 의뢰했거든요. 제가 이때까지만 해도 평소에 시를 읽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가 조금 어렵잖아요. 그래서 친숙하지 않은 시라는 텍스트를 처음으로 다뤄보면서, 시집도 사서 보고, 시 쓰는 법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시와 관련된 것들을 많이 읽어봤어요. 매번 달라지는 내용을 담으면서 제가 몰랐던 것들을 찾아보게 되는데, 이 부분은 제가 그래픽 디자인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그래픽 디자인이 이 사회를 배우는 도구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와 번역에 대해 리서치를 했고, 특히 시 번역은 사람에 따라서 번역의 뉘앙스나 형태가 엄청 달라진대요. 에세이나 소설은 비교적 설명글이기 때문에 번역이 아주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 시는 굉장히 함축적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커서 번역가마다 결과물이 엄청 달라져요. 그래픽 디자인은 번역에 비유하는 때도 되게 많잖아요. 저도 텍스트를 책에 번역하는 입장으로서 국문과 영문이 같은 사이즈 지면에 얹혀지는 방법을 여러 가지 시도해보자는 생각으로 작가들의 에세이 레이아웃을 다 다르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국문과 영문이 교차하는 방식을 사용하거나, 국문과 영문이 회전하다 서로 위치가 바뀌는 방식을 사용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레이아웃을 다르게 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줄줄』이라는 시집 의뢰가 들어왔어요. ‘줄줄’이라는 말은 여기 실린 시 중에 나온 단어에서 따온 건데, 스웨터의 올이 풀리듯이 이야기가 줄줄 풀린다는 내용으로, 말장난처럼 따온 단어인 거죠. 이 책이 한국의 젊은 시인들 10명의 시를 모아서 영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렇게 4개의 언어로 번역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언어별로 디자이너를 다르게 섭외했는데, 저는 프랑스어를 맡게 되었어요. ‘줄줄’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받아서 스웨터에서 실을 줄줄 푼다는 말에서 나온 것처럼 메인 서체 그래픽도 마치 실타래가 얽혀 있는 것처럼 만들었어요. 또, 책을 90도로 돌리면 스크롤 하듯이 읽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올이 풀리는 듯한 느낌으로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런 형식을 취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작업은 책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페이지라는 특성을 활용한 디자인이었죠.
이어서 요나스 메카스라는 영화감독의 글을 모은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을 작업하게 되었어요. 이 영화 감독은 기승전결의 서사를 갖춘 영화가 아닌, 다이어리식 영화로 유명해요. 이 책의 내용도 자신의 집에 굴러다니던 종이 한 뭉치를 발견하고, 이 종이를 다 소진할 때까지 타자기로 무엇이라도 쓰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어떤 서사 없이 자신이 타이핑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어요. 책을 보면서 종이 한 뭉치라는 어떤 시간의 단위가 느껴졌어요. 영화 상영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이 글도 종이 한 뭉치 분량만큼의 글인 거예요. 또 중요한 키워드는 ‘타자기’였는데, 타자기 서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방식 대신 타자기를 어떻게 책에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타자기를 치면 한 줄씩 쓰고, 그다음 줄이 탁탁 올라가는데, 이 방식으로 페이지 우측에만 글을 놓고,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한 줄씩 글줄이 위로 올라가는 식으로 조판했어요. 이 작업을 통해 정지된 매체라고 생각했던 책도 시간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이렇게 모든 작업이 다 조금씩 연결되고, 미완성이라는 말은 가능성이 계속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비평적 디자인을 위해서는 의심하며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중요한데, 혜진 님의 작업도 하나의 비평적 질문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방법과 좋은 질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질문을 던지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의구심이 많은 편이에요. 부당하거나 관성적인 것들을 잘 참지 못하고,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 질문하게 되거든요. '인간은 왜 학교에 다녀야 하지?'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어릴 때부터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어요. 학교 다닐 때 홍대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앞에서 걸어가던 학생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거든요. 한 명이 "주말에 나랑 등산 갈래?"라고 물어보니까, 다른 친구가 "내려올 건데 왜 올라가야 해?"라고 답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그럼 넌 죽을 건데 왜 사냐?"라고 받아치는 걸 듣고 굉장히 철학적인 대화라고 생각했어요. '내려올 건데 왜 올라가?'라는 질문이 정말 신선했거든요.
또 다른 기억은 초등학생일 때인데, 담임 선생님이 "너희들 팩스나 전화기가 무슨 원리로 작동되는지 아니?"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당연히 몰랐죠. 그런데 그 질문이 저에게는 '이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면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이상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원리를 이해하고 쓰면 훨씬 더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준 질문이었죠. 저는 원론적인 질문을 되게 많이 해요. 그래서 아마 저에게는 온전히 당연한 것은 거의 없을 거예요. 모든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니까요.
도미노 프레스의 작업을 많이 진행하며 건축에 대한 관심도 크신데, 디자인과 건축 사이의 연결점과 그 속에서 얻는 영감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할 말이 정말 많은 질문이네요. 디자인과 건축이라기보다는 책과 건축의 관계로 접근해 보면, 자연스럽게 이 둘의 공통점을 많이 발견하게 돼요. 우선 물성적인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요즘 대부분 디지털로 만들어지는데, 그래픽 디자인에서 실제 물성으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거든요. 그중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책이에요. 책 디자인과 건축 모두 물성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또한 저는 단위와 스케일에 대한 관심이 큰데, 건축도 스케일과 굉장히 밀접한 분야거든요. 이런 부분에서도 연결점을 찾을 수 있어요. 제 취미가 역사 공부인데, 디자인사는 주로 19세기 말부터 시작되는 반면 건축사는 원시시대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훨씬 더 근본적이에요. 건축사부터 공부하면 그 안에서 디자인사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미술사와도 다른 점이 있어요. 미술사는 작가라는 개인이 작업하기 때문에 주로 형태나 조형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면, 건축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다수와 함께 지어지죠. 당시 사회의 기술,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산업 구조 안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디자인사와 굉장히 밀접하게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그래서 건축사를 공부하면 디자인사를 훨씬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은 매우 다층적이고 깊은 정보를 다루고 있는 매체입니다. 책을 다루며 다른 분야에 깊이 관여하는 경험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은데, 다른 분야의 관점이나 태도에서 인상 깊게 배운 점이 있나요?
편집 영역까지 깊이 들어가는 경우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대표적으로는 도미노 출판사와 『유용한 바보들』 작업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작업들을 통해 건축 분야와의 교류가 많아졌고, 건축가분들의 관점을 배울 수 있었어요.
최근에는 공연 작업을 하면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어요. 함께 작업하는 음악가가 세 분인데, 각각 전자음악, 국악, 클래식으로 분야가 달라요. 같은 음악 분야 내에서도 이 세 카테고리가 정말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저는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보통 음악은 악보가 있고 그걸 연주하는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건 서양음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더라고요. 국악 같은 경우는 악보가 없고, 선생님에게 사사받아서 소리를 듣고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누구에게 배우느냐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구전과 감각으로 계승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제가 음악 전공자는 아니라 약간 비약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혀 몰랐던 이야기라 무척 흥미롭더군요.
또 전자음악의 경우, 국악과 클래식은 화음 악기이기 때문에 멜로디를 스스로 생성하는 반면, 전자음악은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리를 가져와서 편집할 수 있다고 해요. 소리를 늘리거나 자르거나 증폭시키는 방식이 그래픽 작업과 되게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우리도 내용을 다루잖아요. 혼자서 갑자기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선행되어야 작업이 가능한 거죠. 전자음악도 이런 방법론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되게 재밌었어요.
작업에 흥미를 잃었을 때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흥미를 잃는다는 건 결국 무지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는 게 없으니까 흥미를 느낄 수도 없는 거죠.
제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앞서 말씀드렸잖아요. 졸업하고 나서도 에디토리얼 작업을 할 때 이미지와 텍스트를 다루면서 '나는 그냥 남이 만든 걸 예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슬럼프가 되게 길었어요. 무기력한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됐죠. 그런데 그게 결국 무지해서 그런 거였어요. 그래픽 디자인은 정말 입체적이고 재미있게 볼만한 것들이 많은 분야인데, 아주 작은 사각형 안에서만 이것이 그래픽 디자인의 전부라고 생각하니까 흥미도 없었던 거죠. 지금은 나이를 먹을수록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흥미를 잃을 시간 자체가 아까워요. 시간이 너무 빨라서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 하는데 넋 놓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에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엄청난 장서가가 있는데, 인생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수명을 80세라고 가정했을 때 1년에 몇 권을 읽을 수 있는지까지 계산하면서 책을 굉장히 신중하게 골라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가려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역으로 말하면, 나이가 어릴 때는 무기력해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무기력해질 여유가 없거든요. 하나라도 빨리 더 읽고 싶고, 알고 싶고, 궁금한 게 많아서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어릴 때 흥미를 잃고 무기력해 보는 것도 필요한 경험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재밌는 게 정말 너무 많아서 시간이 항상 부족해요.
그래픽 디자인의 세세한 디테일에 하나하나 목적과 의도를 가지기 어려운데, 이 부분에 대한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이거 왜 이렇게 했어요?"라고 물어보면 다 설명할 수는 있어요. 예를 들어 "왜 이 사이즈로 했어요?", "왜 이 행간으로 했어요?"라고 하면 우리가 책을 볼 때 읽기 편한 비례감이라든지, 서체는 어떤 이유 때문이라든지 말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감각에 의존할 때가 많아요. 그 감각이라는 게 조형성과 관련된 거니까, 그런 부분은 작업자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협업의 개념이 '우리 이거 다 같이 결정하자'가 아니라, 여기는 이 사람, 저기는 저 사람 이렇게 역할을 분배하는 것이 같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하나 모두의 논의와 수락이 필요한 게 협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모든 걸 설명하라고 하면 할 수 있지만, 어떤 부분은 그 사람의 감각으로 구멍을 만들어놔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시안을 여러 개 만들지 않고도 설득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신 내용이 인상 깊었는데, 혜진 님만의 설득 노하우가 있을까요?
이 방식이 효과적인 데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요. 의뢰인의 스케일이 크지 않고, 제 작업에 대해 사전에 어느 정도 이해가 있으며, 창작 자율성이 보장될 때 가능한 접근법이에요. 대기업처럼 많은 사람과 자본이 얽힌 프로젝트에서는 다수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이 필요하죠.
저는 주로 출판물이나 전시, 문화예술 분야, 작가들과 작업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잘 맞아요. 여러 시안을 만드는 대신 하나의 최선안에 집중하는 이유는, 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방향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에요. 경력이 쌓이면서 디자인에 대한 판단력과 결정권을 갖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하나의 시안이라도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는 점이에요. 예산 규모와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해서 많은 고민과 스케치 과정을 거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업 의도와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클라이언트와의 토론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소통할 수 있어요. 충분한 사전 작업을 바탕으로 한 명확한 근거 제시가 설득력의 핵심인 것 같아요.
학생들이 보통 디자인을 초반에 시작할 때 형태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사후적 의미를 붙이곤 하는데, 이런 것들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리서치가 중요한 건 맞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후적 의미가 잘 맞을 때도 있어요. 무의식중에 있었던 생각일 수도 있는 거죠. 도미노 프레스 로고를 예로 들면, 정사각형 두 개를 이어 붙인 형태로 만들었는데요. 도미노 게임의 패가 2:1 비율의 정사각형 두 개를 이어 붙인 모양이거든요. 그리고 책등이라는 건 3차원이 있어야만 발생하는 공간이니까, 로고를 표지에서 책등까지 걸쳐서 보여주면 평면이 아닌 건축적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어요. 처음에 로고를 만들 때는 글자를 어떻게 디자인할지 고민했는데 글자의 개성이 강할 경우, 책표지에 얹혀졌을 때 표지 디자인과 부딪히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로고를 만들지 말고 지시문을 로고로 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표지에 쓰인 서체를 가지고 책 어딘가에 도미노 프레스를 넣는다'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어느 날 다른 디자이너가 도미노 프레스 책을 작업하는데, 제가 로고 파일을 보낸 적이 없는데도 책이 나온 거예요. 생각해 보니 정사각형 두 개 이어붙이고 색은 자유롭게 넣으면 되는 거라 파일이 필요 없었던 거죠. 이게 어쩌면 무의식중에 지시문 같은 로고를 만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론보다 감각에 의해 무언가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노상호라는 작가는 생각을 정리하고 작업하기보다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작업하다가 생각이 정리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반드시 리서치와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과정을 좋아하는 편일 뿐이고,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혼자서 작업하고 계신데, 앞으로 스튜디오를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 나가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어쩌다 보니 혼자 계속하고 있어요. 싫지는 않지만, 힘든 부분도 있기 때문에 복잡한 심정이에요. 저는 작업을 같이 하는 건 좋아해요. 협업도 좋아하고 어시스턴트를 두는 것도 좋아하는데, 인원이 많은 대규모 스튜디오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이 많으면 운영자 입장에서 그만큼 유지비가 많이 들고, 유지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거든요. 그런 운영을 할 체력이 안 되다 보니 지금처럼 작은 규모로, 혼자 하거나 소규모로 하거나 어시스턴트와 함께하는 정도가 괜찮은 것 같아요.
물론 돈을 벌려면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딜레마는 있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일순위가 아니거든요. 여러 가지 삶의 형태가 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꼭 어떤 형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작업할 때 심하게 싸워서 설득하고 쟁취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친구나 작은 그룹, 작가 등 서로 이해도가 있는 사람들과 실험적이고 재밌는 작업을 하는 걸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편이에요.
홍익시디 소식지를 보시는 분들께 좋은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