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이너, 김소미
사람과 사회 그리고 일상의 공간 속에서 디자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며 눈디자인에서 오랜 시간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김소미 디자이너를 인터뷰했습니다. 이번 9월호에서는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를 여러 사람, 여러 조건과 함께 풀어가며 완성되는 디자인의 과정을 조명합니다. 혼자만의 시선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감각으로 익숙한 풍경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온 김소미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과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를 본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소미입니다. 김두섭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눈디자인에서 2012년부터 일하고 있고, 현재는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회사 밖에서는 2018년 동료들과 함께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FDSC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운영지원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소미 디자이너님의 학창 시절은 어떠셨나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어서 컴퓨터 학원을 열심히 다녔어요. 그러다 컴퓨터 학원의 원장 선생님이 개발자 출신에서 웹디자이너 출신 선생님으로 바뀌었어요. 1999년쯤이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이 “이제는 그래픽의 시대다”라며 포토샵을 가르쳐주셨거든요. 당시 포토샵 5.5를 사용했는데, 사진에 필터를 적용했을 때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게 변하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지금은 너무 익숙한 기능이지만 그때는 그런 경험 자체가 굉장히 새로웠거든요. ‘이런 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물어보니 디자인을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그때 처음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미술대학에 디자인과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디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서점에서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통일을 주제로 한 포스터집에서 안상수 선생님의 작업을 보게 됐어요. 당시에는 컴퓨터 그래픽을 주로 활용하던 시대가 아니어서 식자를 한 뒤, 그것을 스캔해 작업하는 방식이었는데, 작품을 팩스로 보내달라는 방식으로 공모전을 열어 받은 작품들을 모아둔 책이었어요. 그 책에는 당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 화려한 그래픽이 많았는데, 안상수 선생님의 작업에 꽂혔어요. ‘NORTH’와 ‘SOUTH’를 교정 부호로 지우고 ‘KOREA’만 남긴 아주 간결한 포스터였는데, 많은 이미지 사이에서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그 작업이 오히려 굉장히 강하게 느껴졌거든요. ‘이건 뭘까, 이런 걸 하는 사람은 누구지?’ 하고 찾아보니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라고 되어 있었어요. 그때 처음 ‘미술대학에 가야 디자인을 배울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홍익대학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막연한 마음으로 미술을 시작했고, 집안의 반대도 있었지만 재수를 거쳐 홍익대학교에 입학하게 됐어요.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걸 해봤어요. 애니메이션이나 영상 관련 수업도 들었는데, 해보니 생각보다 저와 잘 맞지는 않았고요. 그러다 2학년 때 안상수 선생님이 지도교수로 계셨던 한글꼴연구회에 들어가게 됐어요. 은퇴를 앞두고 계셔서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요. 지금의 한글꼴연구회는 레터링 작업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활동하던 때에는 서체에 집중하는 학술적인 성격이 강했어요. 타이포그래피 자체가 점점 재미있어져서, 자연스럽게 타이포그래피와 편집 쪽으로 방향을 좁혀가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모름지기 대학생이라면 이런 건 다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술을 거의 못 마시는데도 술자리에 열심히 갔고, 학생회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과 행사나 소모임, 대외활동도 기회가 생기면 거의 다 해봤어요. ‘대학생’이라는 사람에게 기대되는 경험을 전부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경험이 전부 도움이 됐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니 그 과정에서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반대로 무엇과는 잘 맞지 않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재학 당시에는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으셨나요? 지금처럼 공공디자인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입학했던 2008년쯤에는 온스타일이나 엠넷 같은 방송사에서 모션그래픽이나 팝한 중간 광고물이 많이 나오던 때라 처음에는 영상이나 순수 그래픽, 아트워크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한글꼴 연구회를 하면서부터는 거의 편집디자인만 했어요. 당시에는 3, 4학년 전공 수업에 8시수 6학점의 ‘디자인스튜디오’ 수업이 분야별로 있어서, 비교적 일찍 자기 분야를 하나 정하고 작업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 같아요.
사회적인 주제 자체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한 관심이 있었어요. 당시 학교에 노동조합에 소속된 선생님들이 많아서 사회적 문제를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분위기였고, 불평등이나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홍익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지금보다 학내 분위기가 조금 더 진보적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집회나 여러 활동에 참여할 기회는 자주 있었지만, 제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기획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런 주제를 디자인으로 풀어낸다거나, 활동가처럼 적극적으로 이슈 자체에 개입하거나 하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사회적인 성격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처음 맡게 된 건 2010년쯤 빛소리 친구들의 정기 공연 작업이었어요. 그때 미팅에서 대표님이 “우리는 장애인인데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 봐달라는 식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프로 아티스트로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에 걸맞게 ‘멋있게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그 작업이 잘 이어져 이후 정기공연 작업을 계속 맡게 됐고, 제가 회사에 들어간 뒤에도 빛소리 단체가 커지면서 국제 무용제를 만들게 됐어요. 그 정도 규모는 개인이 맡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회사에서 함께할 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받았고, 그렇게 눈디자인과 인연이 이어져 지금까지 키아다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회적인 관심이 작업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나는 사회적 프로젝트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찾아다녔던 것은 아니에요. 관심은 있었지만, 실제 작업은 우연히 시작된 인연들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경우에 더 가까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나 교수님이 있으실까요?
물론 지금도 3미터 옆에 계신 김두섭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4학년 1학기 편집디자인 스튜디오와 2학기 졸업 작품 프로젝트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에서 늘 강조하신 게 ‘컨셉을 만들고 작업을 거기에 정렬시키라’는 거였어요. 당시에는 ‘컨셉’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피상적으로 느껴져서, 그걸 겨우 이해할 때쯤 졸업한 것 같아요.
저학년 때는 색상이나 서체를 엄격하게 제한한 상태에서 작업하는 수업이 많았어요. 그런데 김두섭 선생님 수업에서는 먼저 비주얼의 컨셉을 세우고, ‘이 작업이 어떤 인상으로 보여야 하는가’를 정한 뒤 그에 맞춰 서체와 크기, 배치, 대비를 설계해야 했어요. 처음에는 그 방식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실무를 시작하고 나니 결국 모든 일은 컨셉 없이는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실제로는 이 책이나 작업이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요즘은 제가 오히려 ‘컨셉’ 얘기를 계속 하고 다녀요.
또 기억에 남는 건 3학년 때 들었던 오진경 선생님의 ‘편집디자인 스튜디오 1’ 수업이에요. 당시 ‘ㅎㅇㅅㄷ’라는 잡지를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저희 팀은 버내큘러 디자인을 주제로 선정했다가 매주 혼났어요. 선생님은 "너희가 이게 단순히 낯설고 재미있어 보여서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거라면 그건 오만한 태도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의미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알게 됐어요. 버내큘러 디자인도 그 일을 해온 사람들이 오랜 세월 쌓은 숙련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디자인인데, 아카데믹한 디자인을 조금 배웠다고 해서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죠.
생각해보니 여태 디자인의 비주얼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연습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런 배움이 없었다면 사회에 나가서 정말 고생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무엇보다 어떤 표현이나 스타일에는 그것이 만들어진 맥락과 시간이 있고,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의 전문성이 담겨 있다는 걸 배웠어요. 디자이너가 어떤 스타일을 가져다 쓴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바로 획득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직군의 사람들과 일할 때도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그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두 분 모두 실무를 오래 하셨고 지금도 현업에 계신 분들이라, 디자인 자체뿐 아니라 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많이 배웠어요. 당시에는 그냥 “이런 관점도 있구나” 정도로 들었던 말들이, 일을 하면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한 것과 실무에서 활용되는 기술에는 얼마나 차이가 있나요? 그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어요.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4년 동안 3D 수업과 사진 보정 수업을 제외하면 툴 수업이 거의 없었거든요. 인디자인도 전부 독학하거나 선배들에게 배웠어요. 반면 회사에 들어가면 당연하게도 디자인도 잘하고 툴도 잘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하게 되니까, 실무에 필요한 기술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배우게 돼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기술적인 차이는 오히려 별것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학생 때의 작업과 실무의 가장 큰 차이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요. 학교 과제는 교수님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의도에서 출발하고, 어떻게 보면 작가도 나고 관객도 나인 작업이잖아요. 실무에서는 클라이언트뿐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클라이언트, 완성된 결과물을 보게 될 대중이나 시민까지 고려해야 해요. 그게 어떤 면에서는 타협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러 조건 안에서 조금씩 가능한 길을 넓혀가는 과정이 또 재미있어요.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롯데월드 단체 관광상품 홍보물이나 공연 기획사 전단지 같은 걸 아르바이트로 만들었어서 그런지, 디자인에 대한 고집이 아주 큰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비주얼을 만들 수 없다’는 좌절감은 사실 거의 없었고요. 클라이언트는 자기 회사나 서비스에 대한 전문가이고, 저는 디자인 전문가이니 서로를 이해해가며 만들면 된다는 쪽에 가까웠어요.
초반에는 제가 괜찮다고 생각한 작업을 대표님이나 당시 실장님이 보고 “이상하다”고 하면 너무 분했어요. 열심히 했는데 왜 이상하다고 하지 싶어서 집에 안 가고 계속 고치기도 했고요. 물론 건강에 안 좋으니 그렇게 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다음 날 다시 보여드렸을 때 “훨씬 낫네”라는 말을 듣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 말을 듣고 싶어서 계속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가 납득이 안 된다’는 성향이 있는 편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주어진 일을 정리해서 끝내고 집에 가는 것보다, 결과물이 내가 봐도 납득할 만하게 나와야 기분이 좋은 사람들요. 저도 그런 편이어서 힘들어도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하우스는 이미 사내 매뉴얼이나 아이덴티티가 정리돼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 시스템 안에서 빠르게 온보딩하고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반면 저는 매번 다른 클라이언트의 다른 작업을 하면서 0부터 시작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쪽을 더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KIADA나 ‘모두의 지하철’처럼 장애와 포용성을 다루는 프로젝트에서, 시각 언어를 설계할 때 특별히 고려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KIADA나 ‘모두의 지하철’이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 건 맞지만, 저는 이 작업들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디자인’이라고 표현하는 건 조금 조심스러워요. KIADA는 기본적으로 공연 포스터와 홍보물이고, ‘모두의 지하철’은 안내표지예요. 다만 그 주제가 장애를 경유하고 있는 거죠.
디자이너가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표현 자체보다도 ‘내가 디자인을 하고 있으니 사회적 메시지를 직접 발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소수자나 사회 혁신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뿌듯함이, 정작 작업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 앞서버리기 쉽거든요. 의도와 다르게 부정적인 연상을 만들 수 있는 표현은 경계해야 하고,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방향에서 비주얼 컨셉을 만들고 거기에 구체적인 요소들을 잘 정렬해야 하죠.
KIADA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조직위가 장애인 무용수의 몸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길 원했어요. 장애가 거부감을 줄 수 있다거나 부끄럽게 보일 수 있다는 전제에서 가리는 게 아니라, 절단된 신체 같은 것도 그대로 보이게 해달라는 요청이었죠. 저는 그게 비장애인이 주류인 무용계에 대한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도 여기에 있다. 우리도 동등한 무용수로 이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부족해도 양해해달라'는 게 아니라요.
초반에는 일부러 너무 친근하거나 포용적인 이미지보다는, 조금은 아방가르드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방향을 택했어요. 프로 아티스트들의 공연으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행사를 거듭하면서, 비장애인 중심의 무용 포스터와 똑같은 방식으로 ‘멋있음’을 만드는 게 과연 충분한가 하는 고민이 생겼어요. 그냥 ‘무용수의 몸’과 ‘멋진 그래픽’이 있는 포스터라면, 장애인 무용제만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2020년쯤부터는 몇 년간 하나의 그래픽 체계를 유지하면서 변주하는 방식을 썼어요. 서로 다른 색과 크기, 면의 개수가 다른 프레임들이 연결되고, 무용수의 몸이 그 안팎을 넘나드는 구조였어요.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장애 유형과 서로 다르게 작동하는 몸들이 함께 만드는 공연이라는 점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더 고민하고 있어요. 한 무용단 안에도 다양한 신체장애나 정신장애 등 여러 장애 유형이 함께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멋있는 무용 공연’을 만드는 데 더 집중했다면, 지금은 ‘장애라는 조건을 가진 다양한 몸들이 함께 만드는 공연’을 어떻게 시각 언어로 풀어낼지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저희의 의도는 그 프레임은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나 기준으로도 볼 수 있고, 동시에 무대의 구조처럼도 읽힐 수 있었어요. 무용수들이 그 경계를 넘고, 안팎을 오가며 공간을 만든다는 개념이었죠. 무용수가 그 무대를 넘어서기도 하고, 무대 위에 나타나기도 하고, 무대 뒤로 들어가기도 하는 모습과 연관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계속 베리에이션을 주었어요.

그 후에도 다양한 장애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행사라는 점을 어떻게 보여줄지 계속 고민했어요. 예를 들어 하나의 무용단 안에도 시청각 장애나 사지 절단 장애 등 여러 가지 장애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서로 다르게 작동하는 사람들, 다르게 작동하는 몸들이 모여서 만드는 현장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그래픽 언어를 좀 더 고민하기 시작한 게 가장 최근의 일이기는 합니다.
디자인 에이전시와 인하우스에서의 경험을 거쳐 현재는 눈디자인에서 오랜 시간 디자인 작업을 이어오고 계신데요. 지금까지 진행해오신 다양한 작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거나 특별히 인상 깊었던 작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에이전시나 인하우스 경험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뻘쭘한 게, 에이전시는 한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고 공연기획사 인하우스도 반년 정도였어요. 사실 지금까지 한 작업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다 기억에 남는데, 굳이 하나를 꼽는다면 유명하거나 ‘디자인계에서 주목받은 멋진 작업’보다는 초·중·고 교과서 작업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4학년이던 2012년 여름에 눈디자인에서 인턴을 시작했는데, 출근하자마자 교과서 작업을 맡았어요. 그때 정말 어려웠어요. 앞서 말했듯 학교에서 하던 편집디자인 과제는 흰 배경에 검은 글씨를 쓰고, 서체나 색상도 제한된 상태에서 레이아웃을 연습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르바이트로 하던 작업도 대부분 이미 있는 가이드라인을 활용하는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교과서는 완전히 달랐어요. 색상도 많고, 이미지도 많고, 서체도 여러 가지가 들어가는데 그 와중에 ‘학습’이 이루어져야 하니까 굉장히 정교하게 시각적 흐름을 만들어내야 해요. 지금도 저는 교과서 작업이 편집디자인의 궁극적인 형태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아마 교과서를 ‘디자인한다’는 것 자체를 잘 생각해보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저도 직접 일을 하기 전에는 교과서를 디자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학습지나 교과서는 굉장히 특수한 분야예요. 교육부의 편찬 지침도 따라야 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의 발달 과정도 고려해야 하고, 지금 만드는 책이 몇 년 뒤 실제 학교에 배포됐을 때의 사회적 분위기까지 어느 정도 생각해야 하거든요.

책 안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시각 요소를 함께 디렉팅한다고 보면 돼요. 예를 들어 본문, 문법, 활동 같은 각 파트의 성격에 따라 어떤 일러스트레이션이 필요한지 정하고, 인포그래픽에 강한 작가가 좋을지, 회화적인 그림이 좋을지, 아이콘처럼 단순한 스타일이 좋을지도 같이 판단해요. 작가를 추천하기도 하고, 스케치를 받아 실제 지면에 얹어본 뒤 “이 부분은 배치를 조금 바꾸면 좋겠다”, “말풍선이 조금 더 커졌으면 좋겠다” 같은 의견을 드리기도 하고요.
교과서는 누가 언제 쓰는지 알 길이 없고, 만들어 놓고 나면 전국의 학교에 깔리는 건데, 학교에서 채택해야 교과서가 쓰이는 거잖아요. 그랬을 때 교과서 디자인을 누가 리뷰해 주겠어요?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디자인을 보는지 저는 몰라요. 이를테면 그냥 교과서 한쪽에 낙서를 하겠죠. 언젠가 디자인이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저희한테 와서 말해주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래도 나름대로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굉장히 큰 보람을 가지고 하는 일이에요.
눈디자인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아트디렉션과 디자인을 같은 사람이 담당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팀원이 나누어 담당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또 팀을 이끌거나 기획을 전개할 때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독립투사처럼 일하지 않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자기개방성에 가까워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빨리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잘 안 되는 걸 혼자 끙끙 앓기보다 팀 안에서 바로 공유하고 같이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멋진 걸 몰래 만들어와서 팀원들을 깜짝 놀라게 해야지’ 같은 건 대체로 뜻대로 되지도 않고, 사실 팀 작업에서는 그렇게 깜짝 놀라게 하면 안 되거든요.
그리고 요즘처럼 기획이나 디렉팅 역할을 많이 맡으면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껴요. 특히 클라이언트와 일하다 보면 여러 요청이 들어오고, 그중에는 내가 100%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많아요. 그렇더라도 협의를 거쳐 어떤 방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면 그 결정을 이해하고 따라가야 하고,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해요.
중요한 건 그 과정의 중심이 나한테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이 결정에 동의했는지, 혹은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이 방향으로 가기로 선택했는지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해요.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지’라고 생각해버리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거든요. 글자를 키우라고 해서 키우고, 줄이라고 해서 줄이고, 색을 바꾸라고 해서 바꾸는 식으로만 작업하면 디자인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워져요.
같은 요청을 받더라도 ‘이 사람이 왜 이런 요청을 했을까’를 해석하고, 그 의도를 반영할 수 있는 크기나 색, 배치를 내가 다시 결정하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에요. 결국 어떤 방향이든 내가 선택해서 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 일을 하면서 덜 소모되는 것 같아요.
FDSC를 조직하고 꾸준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동료 디자이너들과의 이러한 ‘연대’의 경험이 김소미 디자이너님의 작업 태도나, 사회적 프로젝트들을 대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영향을 많이 받았죠. FDSC에서 제가 가장 많이 한 일은 ‘빅활동’을 조직하는 일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사이드 프로젝트와 비슷하지만, 본질은 조금 달라요. 사회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기존에 하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일을 만들어보는 게 주된 내용이에요.
예를 들어 디자인 팟캐스트를 만들더라도 특정 작업자나 작업을 상찬하는 방식보다는 그 안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포트폴리오 리뷰 행사를 만들더라도 단순히 남들이 좋다고 하는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아요. 참가자가 자기 언어로 자신이 잘하고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게 하는 데 더 초점을 두죠. 그러면서 그 일 자체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만들어서, ‘예전에는 이런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른 것도 좋게 느껴진다’는 경험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에 질문을 던지고 우리의 방식으로 다시 구조화해보는 경험은 제 업무에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줬어요.
FDSC를 처음 시작했던 2017~2018년쯤에는 제가 5~6년 차였는데, 마침 번아웃이 왔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그때 FDSC에서 ‘타운홀 미팅’이라는 모임을 열었어요.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참가자들이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디자이너의 수입이나 노동처럼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뤘어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유명세나 회사 규모, 수입이 전부 다른데도 고민은 놀랄 만큼 비슷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의외로 큰 위로가 됐어요. 잘나가는 사람도,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겪는 문제가 그렇게 대단하거나 비극적인 일만은 아니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 작게라도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겼고요.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디자인을 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졌고, 정말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었어요. ‘이런 일도 할 수 있고 저런 일도 할 수 있구나. 결국 나에게 맞는 일을 하면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번아웃을 겪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언젠가 학교 다닐 때 상상했던 ‘멋있는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작업이 잡지에 멋있게 실리고 전시를 계속 하는 그런 사람이요. 그런데 몇 년을 일해도 제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FDSC에서 여러 디자이너를 만나면서 꼭 그렇게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내가 이미 하고 있는 일에서도 충분히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보게 된 것 같아요.
FDSC에는 자기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더 잘하고 싶고,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계속 나누는 게 제 일에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이제는 제가 14년 차라, 잘못하면 ‘보통 이런 일은 이렇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굳어질 시기라고 느껴요. 익숙한 것이 좋은 것으로 느껴지고 새로운 것을 반사적으로 ‘퀄리티가 낮다’고 판단하기도 쉬워지고요. 그런데 FDSC 활동을 하면서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정의가 굉장히 넓어졌어요. 새로운 자극을 서체나 색, 스타일 같은 아트워크뿐 아니라 방법론이나 태도에서도 계속 받게 돼요. 물론 저처럼 같은 업계나 같은 회사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동료들을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아주 추천합니다. 다음 오픈데이는 아마 2027년 1월쯤일 거예요!
클라이언트나 정해진 목적 없이, 김소미 디자이너님에게서 출발한 프로젝트를 한다면 어떤 주제나 형식을 다뤄보고 싶으신가요?
저는 아트워크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차라리 말로 하는 게 더 편하고, 어떤 면에서는 디자이너들이 너무 많은 걸 디자인으로만 풀려고 한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래서 ‘작업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욕구가 강한 편은 아니고, 뭔가를 한다면 강연이나 출판, 워크숍 같은 형식이 더 잘 맞을 것 같아요.
다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주제는 있어요. 하나는 디자인 업계에서 ‘디자인’이라고 여겨지는 것과 실제 세상에서 작동하는 디자인 사이의 간극이에요. 디자인 업계에서 사람들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요즘은 소위 ‘감도 높은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브랜드 작업이나, 엔터 업계의 문법을 쓰는 작업들이 특히 많이 보이거든요. 최근 저희 회사에 들어오는 포트폴리오만 봐도 그런 작업이 정말 많아요. 엔터 업계라는건 사실 전체 디자인 안에서는 굉장히 국소적인 영역이잖아요. 그럼에도 그런 문법이 그 시기의 ‘멋있는 디자인’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 바깥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나는 디자이너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기도 하는 것 같거든요.
저도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나와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굉장히 좁은 의미의 디자인 업계 안에 있는 사람인데도 한때는 ‘나는 저 사람에 비하면 그렇게 디자이너는 아니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왜 특정한 유형의 작업만이 디자인답다고 느껴지게 되는지, 그리고 그런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또 하나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에요. 저는 대전 출신이고 2007년 말부터 계속 서울에서 살았으니 이제 거의 서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서울중심주의가 서울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조차 소외시킬 때가 있다고 느껴요.
그 감각에서 출발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요.
다만 이걸 제가 혼자 ‘사회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풀 것 같지는 않아요. 지금까지도 의도적으로 사회적 주제를 선택했다기보다, 어떤 활동을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작업을 해온 경우가 많았어요. 앞으로도 비슷하게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만들면서 풀게 될 것 같아요.
《모두의 지하철》은 사단법인 무의, 서울시, 서울교통공사, 현대로템을 비롯해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연구팀과 눈디자인 등 여러 기관과 기업이 함께 참여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주체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할 때 각자의 역할은 어떻게 나누어지고, 서로 다른 전문성과 의견을 하나의 디자인으로 조율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연구팀에서 도출한 내용을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김소미 디자이너님께서는 어떤 역할을 담당하셨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이게 공공형 디자인이다 보니, 처음부터 이걸 획기적으로 다르게 만들자는 방향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신 이연준 교수님 연구팀에서 진행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시작했습니다. 교통약자분들이 실제로 환승을 시도할 때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았는데, ‘왜 헤매는가’를 도출하는 건 홍익대학교 연구팀이 맡았고, 저희는 그 결과를 가지고 안내 표지에 어떤 정보가 어떻게 배치되어야 할지를 디자인으로 정리하는 역할을 했어요.
예를 들어 안내 표지가 정확한 위치에 없다는 건 설치 위치의 문제지만, 휠체어 이용자의 경우엔 그 자리 자체가 불편한 경우가 많았어요. 사람들이 자꾸 비켜달라고 하고, 본인도 빨리 이동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을 느끼다 보니 표지 앞에 차분히 머물러 읽을 시간이 별로 없더라고요. 실제로 실험을 해봐도 표지를 꼼꼼히 읽고 기억한 뒤 이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멀리서 스쳐 지나가면서도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표지가 커야겠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게 크기를 키운 첫 번째 이유였어요. 또 휠체어 이용자는 인지 특성상 시야가 낮습니다. 비장애인의 눈높이 기준이 보통 150cm 정도라면, 휠체어 이용자는 115cm 정도예요. 이 낮은 시야각에서도 잘 보이려면 표지를 아예 바닥 쪽부터 위로 길게 배치해야 한다는 판단도 여기서 나온 거고요.
이 모든 게 저 혼자 앉아서 이래야 할 것 같다고 정한 건 아니에요. 저희 팀 전원이 이 디자인의 초기 기획에 참여했고, 특히 송지연 디자이너는 개별 안내표지의 디자인부터 가이드라인 체계를 잡는데까지 엄청난 기여를 했습니다. 시안을 만들어 가면 서울시의 공공디자인 자문위원들이 계셔서, 실제로 지하철 안내 표지를 만들고 자문해온 분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저희 팀과 홍익대 팀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저희끼리는 스티커를 붙여가며 "이건 좋은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 조정하고요. 시안이 나온 이후에는 실제 교통약자 당사자분들, 휠체어 이용자나 노약자분들께 직접 여쭤봤어요. 뭐가 더 좋은지, 왜 좋은지. 이렇게 결정된 거라 과정이 굉장히 길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작년 4월에 시작해서, 12월에 초안이 나왔어요. 그 사이 계속 연구하고, 실험하고, 물어보는 과정을 거친 거지 한 번에 나온 결과물이 아니에요. 올해는 이걸 보급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는데, 서울시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기존 파일들을 다시 열어볼 일이 많거든요. 예전 파일을 열어보면 이거 되게 예뻤는데 싶은 시안들이 있긴 있어요. 하지만 예쁘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때그때 필요에 맞는 걸 선택하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무용, 교통약자 이동권 등 낯선 분야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리서치와 시각화의 비중을 어떻게 두시나요? 디자이너님만의 자료 수집 방식이나, 리서치한 방대한 내용 중 핵심을 덜어내고 다듬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다른 프로젝트랑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처음 다루는 분야의 작업을 할 때는 초반에 글을 주로 봅니다. 기사든 논문이든 블로그 아티클이든, 일단 텍스트로 된 자료부터 읽어요. 거기서 어떤 아이디어나 집중하고 싶은 개념을 찾고 나면, 그다음엔 그 개념과 연관된 시각물을 봐요. 이때는 디자인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이 업계에서 뭔가를 시각화할 때 보통 어떤 방식을 쓰는지를 보는 거예요. 그다음 단계에서는 거기서 찾아낸 키워드나 가치를 시각화한 다른 작업들을 찾아봅니다. 사진일 수도 있고, 회화나 설치물일 수도 있어요. 디자인 레퍼런스는 그다음쯤에나 겨우 찾아보게 되고요. 이게 저만의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공공 디자인과 상업 디자인을 진행할 때,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사항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에 차이가 있나요? 또한 이러한 차이에 따라 실제 작업 방식이나 디자인 과정에서도 다르게 접근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그렇다면 반면에 서로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작업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기준이나 태도가 있으신가요?
둘 다 잘 안 풀린 경우만 놓고 보자면, 완전히 영리적인, 그러니까 상업적인 프로젝트에서는 클라이언트가 고압적인 태도로 나올 때가 있어요. 돈으로 서비스를 추가 구매 하는 식으로 계속 요구한다거나, 저한테 대놓고 "이게 최선이냐", "이렇게밖에 못 하시냐" 같은 말을 할 때도 있어요. 돈을 낸 고객이니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나오는 게 영리에서의 절망편인 것 같아요.
비영리에서의 절망편을 얘기하자면, 비영리는 보통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돈도 많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고, 시간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체계가 없다 보니 힘들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비영리는 "알아서 빨리 해주세요"라고 말한 다음, "이거 바꿀게요", "이거 바꿀게요" 하면서 수정을 서른 번씩 시키는데, 거기에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영리 쪽에서 수정이 잦은 건 보통 윗선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상황이 바뀌기 때문이라면, 비영리 쪽은 완성될 결과물을 그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바꿔봐야겠다 싶으면 또 바꾸고, 다른 시안도 보고 싶다며 계속 생각이 바뀌는 거죠.
반대로 양쪽의 희망편을 생각해보면, 비영리 쪽은 자신들의 자원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 잘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서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자'는 팀워크를 신경 쓰는 분들이 많아요. 자료를 공유하거나 의도와 과정을 설명할 때도 협조적이고, 더 많이 공유하고 함께 정하고 싶어 해요. 이런 부분이 작업할 때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져요. 프로젝트를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지, 그냥 주어진 일만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거든요.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선택도 충분히 존중해주고, 일정이 더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최대한 수용해주는 것도 비영리에서만 가능한 방식인 것 같아요.
영리는 보통 정해진 날짜까지 어떤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결과 중심의 압박이 크다 보니 그런 유연함은 기대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계약 내용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고 그걸 클라이언트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예상한 범위 안에서 일이 명확하고 빠르게 끝나는 편이에요. 비영리는 한 달이면 될 줄 알았던 일이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재미있게 세 달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면, 영리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정해진 기한까지 무조건 끝내야 하니까요. 그렇게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하게 다른 것 같아요.
사회적 가치나 공공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학부생들이 많은데, 막상 실무에 나오면 예산, 관계자 설득, 제약 조건 등으로 한계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좋은 뜻’을 가진 디자이너가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프로젝트를 완성해내기 위해 꼭 갖춰야 할 역량이나 마음가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렇게 자원과 체계의 조건이 다르다 보니, 결국 그 조건 안에서 지치지 않고 일하려는 태도가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니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사회는 매우 크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고, 디자인 작업 역시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이잖아요. 그게 당연하다는 걸 알아야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과 조건들 사이에서 좁은 길을 더듬어 가거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면서, 그 안에서 또 새로운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면 좋겠어요.
앞서 무의 이야기를 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어차피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변동이 있을 수밖에 없고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이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일단 전제하고 있어야 "왜 이런 일이 생기지" 하는 비극적인 생각이 덜 드는 것 같아요. 그다음엔 이 안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로 생각을 전환하는 거예요. 이해할 수 없게 일정이 늦어지고 있을 때, 그걸 그냥 즐겁게 받아들일지, 아니면 조금 더 솔직하게 "3개월을 더 하고 있는데 비용을 좀 더 주실 수 없나요"라고 한마디는 해볼지 정하는 거죠. 혹은 금전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내가 다른 방식으로 얻어갈 수 있는 것들을 역으로 요구할 수도 있어요. 보상이 꼭 돈이나 시간의 형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기획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클라이언트와 함께 기획 회의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거고, 일을 잘 마무리한 뒤 "그분 일 정말 잘하신다"는 평판을 얻어서 다른 일을 소개받게 되는 것도 하나의 보상일 수 있어요. 보상의 형태는 생각보다 다양한 것 같아요.
다양한 공공기관과 문화기관의 작업을 비롯해 FDSC처럼 성격이 다른 활동을 이어오면서, 하나의 스타일을 반복하기보다 프로젝트에 맞는 방법을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취향을 유지하면서도 사고와 표현의 유연함을 잃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이러한 유연함을 기르기 위해 해볼 수 있는 훈련도 궁금합니다.
그냥 아무거나 해보면 되는 것 같아요. 저희 회사만 해도 시크릿쥬쥬 스티커북을 만들었다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총서를 만들었다가, 공연 포스터를 만들었다가, 기업 연차보고서를 만들었다가 해요. 사실 에이전시에 있으면 이런 게 자동으로 해결되는 면도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계속 바뀌니까요. 물론 정확히 한 가지 일만 계속하는 에이전시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기업 일도 했다가, 문화계 일도 했다가, 비영리 일도 했다가 하잖아요. 그렇게 다양한 일이 많이 들어오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부분도 있어요.
요즘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조금 걱정되기도 해요. 프리랜서일 때 받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결국 개인 소상공인의 일이거나 개인 작가의 일에 가까워서, 좁은 업계 안에서 나에게 겨우 주어지는 몇 개의 일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1~2년 정도는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여러 일을 하다 보면 그중에서 좀 더 잘 맞는 것과 아닌 것을 찾아가면서 다음 일을 정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방법도 추천드리고 싶어요. 물론 이건 에이전시라는 형태와 잘 맞는 사람이어야 하겠지만, 개인 작업의 측면에서 본다면 결국 답은 같아요. 그냥 아무거나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학부생 때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기 작업물을 외부에 공개하거나 프로젝트에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자이너님도 작업 초기나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머뭇거렸던 경험이 있으신지, 그리고 이러한 '완벽주의나 시작의 두려움'을 뛰어넘었던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그런 건 회사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없어져요. 지금 디자인 잘하기로 유명한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의 어린 시절을 저는 기억하는데, 지금의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정말 초보적인 것부터 시작했어요.
디자이너들이 연하장이나 달력 만드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런 거든, 재미있게 본 작품을 레터링으로 그려서 인스타에 올려보는 거든, 뭐가 됐든 "나 잘 못하는데 이런 거 해도 되나" 하는 생각 없이 일단 아무거나 다 해보는 게 중요해요. 처음엔 당연히 못생긴 결과물이 나올 거예요. 지금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인스타 피드도 예전엔 다 그렇게 못생겼었거든요. 다만 지금은 그런 게시물들을 보관 처리해서 좋은 것만 남긴 거죠.
여러분도 그렇게 하면 돼요. 어차피 아무도 기억 못 하고, 기억한다고 해도 뒤에서 "누가 예전에 이랬는데" 하고 얘기하는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뻔뻔하게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학생들끼리 워낙 서로 잘 보이는 환경이다 보니, 한 학번 위나 아래 누군가가 인스타에 뭘 올리면 "왜 저래"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몇 년 지나면 그런 건 아무도 몰라요. 그 사람이 정말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일단 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엔 그게 서른 전에만 시작되면 좋을 것 같아요.
현 시점에서 김소미 님의 다음 목표 및 꿈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회사로서는 눈디자인이 설립 30년이 되어가서, 이걸 잘 이용해 근본 있는 디자인 회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지는 아직 고민 중이에요. 그것 때문에 회사소개서도 새로 다듬는 작업 등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요 몇 년이 좀 발산기인 것 같아요. 불러주는 곳이 많이 생겼거든요. 지금은 들어오는 일을 굳이 쳐내지 않고 일단 다 해보는 중이에요. 예전에 노은유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잘하는 걸 하라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걸 하라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되는 일을 하면 좋겠어." 저도 실제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냥 자연스럽게 되는 걸 하다 보니 지금 이렇게 됐어요. 그래서 저도 학생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주저하지 말고 아무거나 해보시라는 거예요.

김소미 님과 같은 분야를 목표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이 되는 한 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조언이라기보다는 응원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제가 가끔 작업 발표 같은 걸 하러 갈 때, 특히 학생분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공감대를 만들려고 학생 때 했던 작업들을 잠깐 보여드리면서 얘기할 때가 있어요. 그때 보면 정말 못 했거든요. 4학년쯤 되어서야 그나마 작업 같은 게 조금 나왔고, 대표님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진짜 이상했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저렇게 일을 하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미대에서 익숙한 방식이 아닌 것이 오히려 여러분에게 잘 맞을 수도 있어요. 저 역시 전형적인 디자이너-아트디렉터 모델, 그러니까 뭔가 세련된 비주얼을 만들면서 스스로의 삶도 아름답게 가꾸거나, 확고한 비주얼 스타일을 갖추고 그에 맞는 개인 작업을 뚝심 있게 이어가는 모델에는 전혀 맞지 않게 살고 있어요. 지금은 말을 많이 하고 구조를 짜는 일에 더 가까운 사람이거든요. 자신에게 잘 맞는 게 뭔지는 처음부터 바로 나올 수 없고, 그냥 열어놓고 이것저것 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힘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