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련 교수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의 장동련 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장동련 교수는 1997년 디자인 매니지먼트 수업을 시작으로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와 25년간 함께하며 올해로 정년을 맞았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장동련 교수의 디자이너이자 교육자, 행정자로서 지나온 삶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삶의 방향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정년을 앞두고 돌아본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기대하는 내일을 인터뷰에서 확인해보세요.

장동련 교수

장동련 교수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선 작년 1210일에 열렸던 정년 기념 강연 축하드립니다. 〈홍익시디 소식지〉 구독자를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우선 홍익시디 소식지와 인터뷰를 하게 돼서 아주 감회가 깊습니다. 저는 1997년도에 홍익대학교 겸임 교수로 디자인 매니지먼트 수업을 맡은 후 2000년도에 전임 교수로 임명됐습니다. 홍익대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여러 디자인 전문 회사에서 대표직도 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역임하면서 주로 브랜딩 쪽 일을 많이 해왔어요. 대표적인 브랜딩 프로젝트는 신한은행, 메리츠증권, 호텔신라, 리츠칼튼, 엠넷 음악방송 등이 있고, 그 밖에도 SUV 자동차 브랜드 테라칸, 요구르트 드링크 등 많은 프로젝트의 기획 및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호텔신라, 엠넷, 세계태권도연맹, 월간디자인

1997년부터 현재까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셨습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와의 첫 인연이 궁금합니다. 함께하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예전부터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하셨던 시각디자인과의 안상수 교수님과 김종덕 교수님, 그리고 권명광 총장님하고도 많은 교류가 있었습니다. 홍익대학교로 오기 전에 국제적인 행사에서 안상수 교수님, 김종덕 교수님하고 행사를 기획한 경험도 있었고요. 늘 홍익대학교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있던 상황에서 97년도에 시각디자인과 최초로 디자인 매니지먼트라는 수업을 개설하게 됐어요. 이 수업을 개설하기 전,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은 졸업 후 현장에서 모든 것을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학과는 ‘졸업하기 전에 실무적인 부분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자.’라는 취지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죠.

디자인 매니지먼트 과목을 개설하시고 26년간 맡아오셨습니다. 이 수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 수업에 대해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디자인 매니지먼트라는 수업은 이번 학기까지 제가 26년째 진행을 해왔습니다. 졸업반인 4학년 학생들에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디자인 상황을 이해시키고 사회 진출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수업이에요. 디자인 경영, 기획 단계, 조직에 대한 개념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아트 디렉팅 등 전반적인 상황을 통제하는 단계로 여러분에게 약간 생소할 수 있지만 우리가 현업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들이죠. 우리의 가치를 최대한 부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아까 질문에 보면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 수업을 수강한 학생 중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회사를 창업한 예도 많았어요. 수업에서는 매년 4명 또는 5명의 구성원으로 학생들이 조를 짠 후 기말에 경연해요. 한 학기 동안 각 조가 하나의 프로젝트로 가상의 디자인 기업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외부의 전문 회사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3명을 초청한 후 저를 포함한 4명이 심사를 해서 매년 최우수 팀을 시상했어요. 첫해 우승했던 팀의 대표가 현재 펜타브리드를 20여 년째 운영하는 박태희 대표입니다.

우리는 먼 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기반이 돼야 하므로 저는 이 수업이 그 기반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번 학기에도 약 21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는데 수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디자인 경영을 이해하게 된다면 본인이 앞으로 구축하는 것에 대한 입지를 보다 경쟁력 있게 전개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26년간의 학교생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홍익대학교에서는 상당히 많은 추억이 있고요. 지금은 우리가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지만 오래전에는 학년마다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함께 경주, 부여, 제주도로 떠나곤 했습니다. 4학년의 경우엔 우리나라와 근접한 일본, 중국, 대만 등으로 45일의 디자인 기행을 다녀왔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북경에서의 기행이 기억나네요. 그때 약 40명이 함께 간 것 같아요. 홍콩 같은 경우는 보통 두 명의 지도교수가 인솔하는데 당시 저와 크리스 로(Chris Ro) 교수님이 함께 인솔했어요. 그때 크리스 로 교수님이 학교에 오신 지 얼마 안 됐었기 때문에 디자인 기행에 대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제가 약간의 멘토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홍콩에서의 기행이 저에겐 또 다른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87년도에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헨리 스테이너(Henry Steiner)가 홍콩에서 운영하는 회사 ‘Steiner & Co.’1년 동안 근무했던 추억이 있어요. 홍콩에 가면 명소라고 불리는 몇 군데를 항상 방문하는데 학생들과 센트럴 지역에 있는 여러 명소를 함께 방문하면서 제 젊었을 때 모습도 떠오르고 그랬네요. 학생들 시선으로 새로운 문화를 디자인 차원에서 경험하는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코로나 상황이 개선되면 부분적으로 디자인 기행을 다시 도입해서 지도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떠날 수 있으면 합니다. 우리가 수업 시간을 통해서 배우는 점도 있지만, 여행을 통해 현장에서 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디자이너로서의 시각을 넓히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홍콩에서는 홍콩 폴리텍대학교의 캠퍼스를 방문해서 타국의 디자인 전공 학생들하고도 교류할 수 있었고요. 먼 미래가 아니라 조금 더 가까운 미래에 이 학과 행사를 다시 한번 도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주신라

세계태권도연맹, 한국관광공사, 호텔신라 등 지금까지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셨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정년퇴임 강연에서도 언급했던 프로젝트인데요, 198930대 초반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최초로 제주신라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때 프로젝트를 주최하는 기관이 지금의 한솔제지인 전주제지였고, 전체 디자인 의사를 결정하는 분이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으로 한국에서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가장 까다로운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그분에게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에 모두가 굉장히 공포를 느꼈고 몇십 년 된 베테랑도 그분 앞에서는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저는 오히려 그때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소신껏 제가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했습니다. 대상이 호텔이었기 때문에 분위기를 연출하는 부분도 아주 중요했어요. 제주신라 프로젝트에서도 제 아이디어의 가치를 최대로 부각하기 위한 방법을 구상했습니다. 나름대로 판단을 가장 잘했던 부분은 룸서비스라는 개념을 프레젠테이션에 도입한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외교관을 28년 동안 하시면서 저 또한 외국에서의 많은 여행과 때에 따라서는 고급 호텔을 체험할 수 있었어요. 호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룸서비스를 받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컴퓨터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슬라이드로 제 아이디어를 표현했는데, 아주 아늑한 재즈풍 음악으로 배경 음악을 연출했고 조명을 켠 다음엔 룸서비스 웨이터들이 룸서비스 원탁을 천천히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 원탁 안에는 음식이 아닌 화면에서 보여줬던 Do not Disturb 카드, 샴푸 용기 등 실물로 제작한 목업들을 여러 가지 색상과 아늑한 분위기로 연출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이인희 고문께서도 그 성의와 디자인을 연출하는 아이디어에 감동하셨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 이후에도 저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누가 최고 의사결정자인지를 확인하고, 그분의 감성은 무엇인지, 제 아이디어를 어떻게 자신감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항상 체계적으로 구상합니다.

디자인의 방향성은 디자이너의 마음속과 디자이너가 준비해온 논리체계가 같이 겹쳐서 모든 승부는 프레젠테이션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특히 학생분들은 수업 시간에서도 본인의 아이디어를 동기들과 담당 교수님께 전달할 때 어떻게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데, 저는 여러분이 이 역량을 갖추는 데 어떤 학년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몇십 년 경험을 요구하는 어떤 능력이 아니에요. 저는 40년 전에 학부를 다녔지만, 이 순간에도 절차는 똑같다고 생각해요. 프레젠테이션에 유능한 친구들이 앞서 언급한 디자인 매니지먼트 수업의 기말 발표에서 거의 매년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것처럼 여러분 역시 얼마든지 2학년, 3학년, 4학년 때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랜스 시대의 트랜스 브랜딩』

브랜딩에서 특별히 중점을 두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교수님이 주창하신 트랜스 브랜딩의 관점에서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브랜딩이라는 용어는 노르웨이말로 직인 시키다라는 뜻이에요. 브랜딩은 과거 유럽에서 가축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던 목장 주인들이 본인들의 가축 동물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해서 쇳덩어리로 낙인을 찍었던 것에서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천년이 지난 현재 브랜딩의 개념은 여러분이 잘 아는 삼성 로고, 현대자동차 로고 등 상표의 의미도 있죠. 지금 우리가 사는 모바일, SNS 시대에는 기업의 존재감, 위상만으로는 우리가 기업을 신뢰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트랜스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도출했고, 9년 전에는 『트랜스 시대의 트랜스 브랜딩』이라는 책을 저서 자로 출판했어요.

트랜스(trans-)는 변화함을 나타내는 접두사예요. 트랜스 브랜딩의 의미는 과거의 브랜딩이라는 개념과 브랜딩을 전개하는 방법이 진화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해시태그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본인의 SNS와 연동해서 도입하곤 합니다. 기업은 브랜딩을 전개하는 방법에 공감대를 더 얻기 위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서 기업과 호응이 맞는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하는 방식 등으로 그 기업에 대한 존재감을 간접적이고 더 부드럽게 무의식적으로, 무형적으로 전개한다는 개념이 바로 트랜스 브랜딩이에요.

저도 얼마 전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또 오래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소통을 많이 해온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장동련이라는 사람도 브랜드라는 이야기예요. 여러분도 다 개별적인 브랜드라고 스스로 생각해야 해요. 졸업한 후에도 여러분의 브랜드 가치가 활동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좌우해요. 천 년 전 노르웨이의 가축 동물 개념에서 나아가 오늘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다 브랜드라고 생각하면 되고, 브랜드를 전개하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며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가 다 트랜스 브랜딩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교수님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에 영향을 끼친 관점이나 방법론이 있었나요?

네. 많은 경험을 통해서 저의 디자인 정서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여러분도 고등학교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 전에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 경험도 있었을 거예요. 이와 같은 약 20년 동안의 모든 성장 과정 안에서 여러분의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었을 거예요. 저는 아버지가 28년 동안 외교관 활동을 하셨기에 아시아 문화권, 미국 문화권, 유럽 문화권, 아프리카 문화권으로 호주를 제외하고는 모든 대륙에서 거주 경험이 있었어요. 덕분에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문화의 가치를 이해했고 외국에 나가면 한국 문화를 강조하고 반대로 한국에서는 외국의 문화를 강조하고는 했어요. 국제적으로 장동련이라는 사람은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항상 고려하는 디자인 마인드가 결국 저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4개의 OTT 채널들을 구독하고 있어요. 상당히 큰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애플 TVTED LASSO나 넷플릭스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이유가 현지에 없다고 그 문화를 체험하지 못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애플 TV에서 THE MORNING SHOW를 보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미국 뉴욕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상황을 작중 인물들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저는 과거에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4년 다녔고 그 이후에도 학부 일부는 파슨스에서 다니며 뉴욕에서 7년을 살았기 때문에 아직도 제 정체성의 일부는 뉴욕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뉴욕에 관련된 드라마를 보며 공감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현지인이 아니고 지금 사용하는 표현 방법들이 다르기 때문에 드라마를 통해서 그 감각을 또다시 업데이트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디자인 아이덴티티에서의 가장 큰 관점은 다양한 문화와 그 양면성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향후에 여행 또는 석사, 박사를 유학으로 외국에서 경험하기도 할 텐데 외국에서는 우리가 한국 문화의 홍보대사가 되고 한국에서는 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를 조화롭게 본인의 작품에 접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동련 교수 정년 기념 강연

정년 기념 강연 가운데,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고 실행하는 것이 유능한 디자이너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분야를 찾고,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디자인을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또는 졸업 후에 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디자인 입지를 찾는 과정이 험할 수가 있어요. 상당히 많은 혼란이 올 수 있고, 타인과 비교될 때도 있고요. 그래서 앞에서 했던 답변과 조금 유사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UI/UX, 또는 저처럼 브랜딩을 하는 등 다양한 분야들 사이에서 항상 그 딜레마가 오는 순간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중심이 있어야 해요. 그러면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가장 쉽게 이해하고 구현할 수가 있어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 모든 과정에 대한 가치를 느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모두가 대기업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졸업한 후에 개인 스튜디오를 창업하기도 하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예시도 있고 각자 다른 목적이 있죠. 그래서 디자인 공부를 하는 과정은 스스로 인생에 대한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늘 많은 강연에서 비유하는 게 성경에서 쿼바디스(Quo Vadis)라는 라틴어가 있어요. 쿼바디스라는 개념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에요. 저도 이제 다음 주면 정년을 맞이하지만, 이 60대 중반에도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면서 쿼바디스.라고 스스로 질문해요.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학교에 다니면서 하루는 미술관에 가기도 하고 하루는 떡볶이도 먹고 또 하루는 OTT를 통해서 프로그램을 보는 것들 모두 귀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그 경험을 통한 디자인 일기를 쓰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내 생각, 나의 미래의 꿈을 쓰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나는 뉴욕에 있는 MoMA의 디자인 큐레이터가 되는 게 꿈이다. 좋죠. 또는 나는 1년 동안 세계 일주하면서 다니는 나라마다 만나는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서 나중에 그걸 웹툰으로 만들겠다. 그런 꿈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모두가 꿈이 같을 수는 없어요. 각자 본인의 꿈을 존중하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는 과정은 1년 만에 올 수도 있고 또 10년 만에 올 수도 있어요. 근데 10년 만에 와도 저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년 기념 강연에서 재직 중인 교수진에게 균형에 대해 강조하셨던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학생들이 추구해야 할 균형은 무엇일까요?

균형이라는 의미는 학생 때도 중요하고 사회에 진출한 후에도 중요하고 죽을 때까지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다음 질문하고도 연계되지만, 여러분의 디자인 라이프는 이미 시작됐어요. 학생 때부터 시작이 된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디자인 라이프를 설계하고 있고 학생 때는 학업이 있지만 그게 90%가 아니에요. 학업은 50%라는 얘기죠. 지금 소식지 팀을 굉장히 칭찬하고 싶은 것은 소식지를 위해서 봉사를 하고 있고 저하고 지금 줌으로 인터뷰하는 것도 새로운 맥락을 경험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다양한 경험을 구상해야 한다는 얘기예요. 과제를 위해 스스로 시간 관리도 해야 하지만 동기들과의 협업 프로젝트에서 서로 의견을 소통하는 과정도 중요하고 학교생활 외의 문화 체험 역시 중요합니다.

만약 최근에 핫 플레이스가 등장했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 장소의 사전 정보를 파악해서 그곳이 맛있는 카페가 됐든 음식점이 됐든 체험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다양한 콘텐츠를 극장 외에도 OTT 같은 경로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죠. 제 경우엔 작년 연말에 용산에 있는 CGV 아이맥스 관에서 〈듄〉이라는 영화를 체험했어요. 아이맥스를 고수한 이유는 감독인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작업한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불리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유명한 감독의 작품이 있으면 저는 항상 그것을 최선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장동련 유튜브 채널, youtube

현재 진행하고 계신 DLM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는데요, DLM‘Design Life Management’의 약자로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삶을 작품보다는 그 사람이 경험한 삶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디자인을 처음으로 알게 된 동기 혹은 대학에서부터 디자인을 계속 고수하게 된 동기, 그리고 30대, 40대, 50대(특히 저 같은 경우는 60대지만)를 거쳐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변화해 온 과정과 그것들을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반영하는지에 대해 다룹니다.

1년 전에 안그라픽스 출판사와 협업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우선 앞부분은 모든 자료를 영상으로 수집하고 있어요. 현재까지 24명의 자료를 받았고 줌으로 셀프 녹화를 하는 방법으로 진행했어요. 시각디자인과 교수진 분들이 모두 참여했고 또 이나미 교수, 한명수, 박태희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의 원로 중에 한 분인 루이스 넬슨(Louis Nelson)을 인터뷰했습니다. 다음 계획으로 국제화를 추진하려고 해요.

한 달 전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현재 이인수 교수님, 크리스 로 교수님, 이동훈 교수님 등 총 5명의 인터뷰를 올렸어요. 장기적인 목표는 어느 정도 자료를 구축한 다음에 플랫폼을 책 『트랜스 시대의 트랜스 브랜딩』처럼 출판으로 옮기는 거예요. 안그라픽스와 해당 내용을 책으로 옮기고 본문에 QR코드를 함께 실어 본문이 영상으로 연결되는 멀티 플랫폼으로 전개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디자이너, 디자인 교육자, 디자인 행정가로서 수많은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다음 주에 정년 퇴임을 하지만 제 마음속은 서른아홉이에요. 아직 서른아홉이라는 마인드로 앞으로 60년 정도의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선 홍익대학교에서는 디자인 매니지먼트 수업을 몇 년 더 진행하려고 합니다. 30년을 채워서 하나의 기록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예요. 다음으로는 지금 제가 있는 환경이 이번에 새로 입주한 신논현동에 있는 연구실이에요. 현 입지에서 제가 실행할 수 있는 역할은 디자인 조언자(advisor)라고 생각해요. 조언자로서는 기존의 디자인 회사 혹은 기업이 제시하는 디자인에 관련한 문제점들을 부분적으로 해결하고, 장기적으로 몇 달 또는 1년 단위로도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2개의 회사의 디자인 자문직을 1년 동안 하기로 했어요. 우선 교육자로서 수업을 진행하며 디자인 조언자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그 밖에도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해외의 몇 개 대학을 방문해 교육하는 것도 거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ㅎㅇㅅㄷ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지난 정년 기념 강연에서 노마드(nomad)라는 비유를 했지만,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의 교수로 오기 전까지는 심리적으로 스스로가 유목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는 저의 근원이자 잊을 수 없는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과 학생들도 지금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의미 있는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정체성 역시 시각디자인과와 깊게 연관되어 있을 겁니다. 해외에서도 우리 학과에 대한 인지도와 위상이 높아서 우리가 역할 발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항상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본인의 근원과 시각디자인과의 뿌리가 연계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며 우리의 무대가 커졌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시각디자인과의 많은 선배와 또 저의 많은 제자는 현재 외국에서도 활동하고 대기업에서 임원으로도 자리하고 있지만, 개인 작가로도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렇듯 우리 시각디자인과가 하나의 대단히 큰 커뮤니티라는 사실에 늘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길에서 만나게 된다면 우리 시각디자인과라는 어떤 큰 인연으로 모든 것을 같이 추진했으면 하네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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