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애니메이션 아트디렉터, 김다혜

소니 애니메이션 아트디렉터 김다혜(Celine Kim) 동문을 인터뷰했습니다. 김다혜 동문은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컨셉 아티스트를 시작으로 미국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김다혜 동문과의 대담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김다혜

김다혜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홍익시디 소식지〉 구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 이름은 김다혜이고, 미국에서 활동할 때 쓰는 아티스트명은 Celine Kim입니다. 직업은 아트 디렉터고 미국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첫 직장은 드림웍스였고 그 다음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에서 조금 일하다가 지금은 소니 애니메이션에서 아트 디렉터를 하고 있습니다.

재학 시절, 인상 깊었던 수업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시각디자인과에 다닐 때, 필름 메이킹 스튜디오와 고전 영화 감상 수업을 들었던 게 기억이 나요. 기초적인 것들을 많이 배웠었어요. 실사에서 통용되는 180도 카메라라든지, 그 샷의 이름 등 말이에요. 실사 영화의 기본적인 이론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촬영 용어와 실제 카메라 사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해요. 사실 애니메이션 자체가 실사 영화에서 영감을 받는 부분도 많거든요. 예를 들어 미팅 때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라이팅과 구도가 좋았다'고 말하며 우리 영화에 어떻게 적용해볼지 고민해요.

그리고 학생 시절 힘들었던 팀프로젝트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사람과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결하고 헤쳐나가야 될지에 대해 노하우가 조금은 생긴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결정하시게 된 첫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대학생 때 대형 스튜디오들의 본격적인 3D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먼저 〈드래곤 길들이기〉가 나왔고, 그 다음 〈라푼젤〉이 나왔었어요. 영화관에서 두 개를 다 보았는데, 스토리도, 애니메이팅도 정말 완성도가 높아서 충격을 받았어요. 원래 모션 그래픽을 했었는데, 그때 3D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마야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저도 그런 멋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 3D 툴을 다루기 쉽지 않다 보니, ‘애니메이션보다는 원래 하던 모션그래픽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홍익대학교와 미국 칼아츠 간의 여름방학 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한 달간 캘리포니아에서 지내게 되었어요.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는 디즈니가 설립한 학교라서 애니메이션과가 유명해요. 애니메이션과를 구경할 기회도 있었는데, 그때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실제 디즈니에 나오는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방법을 이 과에서 배우고 있는 거예요. 과 자체가 그것을 위해 구성이 된 과더라고요. 한국의 애니메이션과랑은 많이 달랐어요. 칼아츠 주변의 디즈니, 드림웍스 등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에도 견학을 가서 구경도 하고,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김상진님을 뵈었던 기억도 나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접하고 나니, 컨셉 아트, 캐릭터 디자인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후배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포트폴리오로 작업한  〈오페라의 유령〉이에요.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100% 제가 스스로 아트디렉팅을 해서 그려낸 작업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가장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또 커리어의 첫 발을 내딛게 해준 작업이어서 제일 뜻깊기도 하고요. 회사에서 했던 작업들은 저보다는 감독님들을 위한 작업인 경우가 더 많거든요. 개인 작업도 가끔 하는 편인데, 그럴 때 가장 저다운 작업을 하는 것 같고, 저의 취향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재밌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중에 애니메이션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한 것들도 많아서, 개인 작업들을 봐주시면 행복할 것 같아요.

〈오페라의 유령〉 작업 전에는 사실 배경과 캐릭터 디자인 비율이 반반 정도 차지하는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그 때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 특성상 배경과 캐릭터 아티스트를 분리해서 뽑는 경우가 많아서, 채용 담당자 분들이 항상 제 포트폴리오를 보며 한 분야를 정해서 그걸 중점으로 구성하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오페라의 유령〉 프로젝트를 시작 할 때 처음로 90% 전부 배경 작업으로 채워진 구성을 시도해 봤어요. 또 하나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이 있는데, 페인팅 마다 샷 구성을 최대한 다양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려울 수도 있는 구도를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싶었거든요. "Comfort zone(안전지대)"이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아티스트로서의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실험적인 시도를 이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또 그래야만 제 작업이 차별화 된다고 생각했고요.

〈오페라의 유령〉

이전 인터뷰들에서 그림체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서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하셨는데, 학생 시절에 롤모델이나 존경하는 작가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학생 때 한국에 있을 때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분들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좋았던 영화들의 컨셉 아트 북을 몇 개씩 샀어요. 그 책을 보면 그림이나 디자인 옆에 작가 이름이 써있어요. 누가 그렸고, 누가 디자인했고, 누가 작업했는지와 아트 디렉터들의 프로세스나 생각 같은 것도 그 책에 나와 있어요. 거기서부터 알게 된 정보들을 구글링하는 것으로 시작했죠. 그때 알게 된 분이 캐릭터 디자인 분야의 글렌 킨(Glen Keane)이에요. 인어 공주도 디자인하셨고,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야수도 메인 애니메이터랑 디자인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그 분 그림을 그때 알게 됐고 또 헬렌 첸(Mingjue Helen Chen)이라는 분이 계세요. 미국계 중국인 아티스트이신데, 〈주먹왕 랄프〉로 제일 유명하시고,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프로덕션 디자인을 하셨어요. 작업이 좋아서 당시 유명했던 텀블러 팔로우도 했었어요. 지금은 제 상사입니다.

셀린 님이 생각하시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만들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직접 현장에서 촬영하고 배우들이 연기를 해야하는 실사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아티스트 입장에서 너무 좋은 게 풀부터 건물, 캐릭터, 몬스터 등 전부 아트디렉팅을 할 수 있잖아요. 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며 만들어나가야 하는 구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배우가 있는 게 아니라, 배우를 만들어내고 그 배우를 컨셉을 짜는 것부터 애니메이팅, 렌더링까지 다 해줘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게 멋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홍익대학교에는 애니메이션을 다루는 수업이 적은 걸로 아는데, 셀린님은 학부 시절에도 꾸준히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셀린님은 애니메이션 작업을 학부생 때 학교에서 수업시간을 이용해 하셨는지, 아니면 개인작업 위주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3학년 말에 칼아츠 연수를 가서 처음 배우게 됐죠. 졸업하기까지 1년 정도를 남겨 두고, 혼자 모작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포토샵과 태블릿을 이미 쓸 줄 알았기 때문에, 졸전도 컨셉 아트 형식으로 했어요. 그때 교수님들이 저를 좀 많이 어려워하셨어요. 늦게 시작했고, 진로가 바뀐 만큼 ‘얘를 어떻게 지도해야 될까’ 고민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무사히 졸업을 잘 했죠. 이후 ‘내가 아는 선에서만이라도 더 그려보자’라는 생각으로 개인 작업을 했어요. 그 뒤에 유학을 갔고,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컨셉 아트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학부 시절

졸업 전시까지 마치신 뒤 바로 유학을 가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졸업 전시와 유학 준비를 병행하셨는지, 준비 계기나 과정이 궁금해요.

유학 지원을 할 때 졸업 전시 작업을 넣긴 했지만, 그 외의 다른 작업들도 새로 준비해야 했었어요. 지원서를 넣기 위해서는 토플 점수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졸전이 끝나자마자 먼저 영어 학원을 끊고 공부에만 집중했어요. 두 달을 열심히 공부했더니 지원 가능점수가 한 번에 나오더라고요. 한 번에 하나밖에 못하는 성격이어서 최대한 집중해서 영어 점수를 먼저 따내고, 학원을 들어가서 포트폴리오 준비를 했죠.

부모님과 2가지 약속을 하고 유학 허락을 받았는데, 첫 번째 조건은 졸업을 하는 거였어요. 홍대라는 좋은 학교를 이미 다니고 있는데, 졸업을 하고 가지 않는 거는 말이 안 된다라고 하셨거든요. 두 번째는, 포트폴리오를 열심히 준비해서 학점을 최대한 많이 받은 뒤 편입으로 들어가는 거였죠. 지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는데, 그때 당시 칼아츠는 편입이 불가능했던 걸로 기억해요. 다른 학교를 찾아보다가 아트센터를 알게 됐죠.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의 아트 디렉터들은 다 아트 센터를 나왔더라고요. 여기는 편입도 되고, 커리어나 아웃풋도 좋은 학교인 것 같아 아트센터로 편입 겸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아트센터와 홍익대학교의 교육 방식에 차이는 어땠나요?

홍익대학교는 미술대학만 있는 학교가 아니잖아요. 수많은 다른 과가 있기 때문에, 전공 이외의 수업을 들으면 미술과 관련 없는 수업이 많아요. 그리고 같이 듣는 친구들도 다른 단과대학 소속인 경우가 많고요. 근데 아트센터는 미대만 있는 학교이다보니 전공 외 수업도 전부 미술과 관련이 있어요. 말은 역사 수업이라고 하는데 들어보면 다 미술 역사 수업이에요. 철학 수업도 과제가 다 미술과 연관되어있어요. 철학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그래픽 노블로 그려 오라는 식이죠. 이렇게 모든 것이 미술, 디자인과 연관된 게 신기했던 것 같아요.

아트센터에서의 작업물

한국이랑 LA, 독일 등 다양한 나라를 경험하셨어요. 환경에서 오는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다양한 경험들이 (아트 디렉팅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만화책을 정말 많이 봤거든요. 애니메이션도 많이 보면서 컸고요. 그런데 외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저와는 너무나 다른 것들을 보면서 커 왔어요. 스타워즈, 닌자 거북이, 배트맨, 스파이더맨 같은 것을 보고 자란 미국인이 한 작업과 중학교 때 에반게리온을 보며 자란 제가 하는 작업에는 차이가 있죠. 영감, 아이디어적인 면에서 외국 분들이 저를 새롭게 봤던 것 같아요. 그들은 제가 본 것을 보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친구는 어디서 자꾸 이상한 걸 갖고 와?’하죠.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남들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게 강점인 것 같아요. 그림은 어차피 업계에 들어오면 조금씩 다르게 그릴 뿐이지 다 잘 그리기 때문에, 결국은 아이디어 싸움이거든요. 대다수의 미국 사람들과는 다른 감성을 갖고 올 수 있다는 게 차별점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항상 여행 얘기를 하게 돼요. 여행 가면은 그곳에서 받아오는 영감이 있고, 에피소드들도 도움이 되는 게 많잖아요. 무뚝뚝한 독일 사람들, 귀엽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일본 사람들 같이 나라마다 다른 분위기, 일상적인 경험들이 영감이 되고 도움이 되죠.

요즘엔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특정 나라의 문화권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면 마드리드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디렉팅할 때 훨씬 자세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죠. 그렇게 시각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봤을 때, 여행을 다니면서 견문을 넓히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여행을 가면 사진을 많이 찍고 아카이빙하기도 하는데요,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돌 위에 단풍잎이 얹어져 있었는데 텍스처가 예뻐서 찍었던 적이 있어요. 일본에 관련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그런 분위기의 돌 하나는 기가 막히게 디자인을 할 수 있겠죠. 특히 저는 배경 위주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도움을 많이 받곤 해요.

셀린 님의 작업은 코스튬 디자인, 세트 디자인, 캐릭터 디자인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것 같아요. 또한 다른 인터뷰에서는 본인을 한 분야를 깊이 파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 표현하기도 했고요.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자유롭게 본인의 스타일로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키우셨는지 궁금합니다.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도,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도 둘 다 괜찮아요. 스페셜리스트도 정말 많아요. 저 같은 사람이 더 없는 편이죠. 축구랑 비교하자면 미드필더 같은 느낌. 이건 제 성격이랑 좀 더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저는 쉽게 질리는 편인데,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 있잖아요. 저는 이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케이스라고 보면 돼요.

배경 페인팅을 하다가 ‘이거 이제 재미없는데, 빨리 끝내고 캐릭터를 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캐릭터 디자인을 조금 하다 보면 ‘재미없네, 빨리 다음 코스튬 디자인을 해야겠다’ 생각해서 다음 작업을 시작해요. 이렇게 여러 작업을 돌아가며 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까 제너럴리스트가 된 거예요.

회사 가서도 항상 이렇게 얘기해요. ‘나는 이것저것 작업해야 속도도 빨리 나오고 제일 좋은 결과가 나오는 사람이니, 나를 100% 활용하고 싶으면 여러 업무를 줬으면 좋겠다’라고요. 어떨 때는 큰 페인팅 작업을 하고, 어떨 때는 정말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식으로요. 대부분 회사들이 제 성향을 존중해줬어요. 그렇게 몇 년을 작업하다 보니까 다 어느 정도는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됐던 것 같아요.

이러한 ‘제너럴리스트’의 능력을 인정 받아 소니픽쳐스에서는 현재 아트디렉터로 근무하시고 계시잖아요. 전체를 총괄하는 아트 디렉팅 일은 시각개발 아티스트 일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아티스트일 때 편안함은 있어요. 내가 맡은 그림만 생각하면 되니까요. 열심히 그리고, 콘셉트와 디자인을 보여주면 수정사항이 들어오죠. 그럼 작업물을 다시 나만의 동굴 속으로 갖고 들어가서 조용히 고치고, 컨펌 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해요. 아티스트는 주어진 작업을 본인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만 신경 쓰면 돼요.

그런데 아트 디렉터는 개개인 아티스트를 하나하나 다 만나서 조율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사람들이 다 똑같이 그릴 수는 없잖아요. 다 조금씩 다르게 그리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이 영화의 스타일을 짚어주어야해요. 예를 들어 아티스트가 나무를 그렸다면 ‘우리 영화의 나무는 이 스타일이야’라고 짚어주죠.

이렇게 팀원과 소통해야 하는 일이 많다보니,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을 가진 분들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감독뿐 아니라 모델링, 시각효과, 라이팅 등 모든 부서와 다 소통하고 조율해야 하니까요. 사실 이 일은 저도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요.

‘다시 아티스트로 돌아가도 괜찮겠다’ 혹은 ‘병행하거나 번갈아 맡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아티스트일 때의 편안함이 조금 그립기도 한데요, 한편으로는 소통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아트디렉팅을 계속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반반인 상태예요.

기획에서 실제 영화로 런칭되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 것 같아요. 하나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한 말이지만, ‘스토리’가 제일 중요합니다. 시각적인 부분은 스토리를 서포트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스타일이 별로여도 이야기가 좋으면 사람들은 보거든요.

스토리의 기반이 되는 스토리보드만으로는 관심을 끌기가 어려워요. 그럴 때 아트가 들어가서 멋진 비주얼, 매력적인 캐릭터로 채워 넣어 주는 거죠. 그때부터 회사 측에서도 관심을 보이고요. 저희끼리는 ‘그린 라이트’라고 부르는데요, 스토리보드에 비주얼이 더해지는 과정을 거쳐서 ‘그린 라이트’가 켜지면 회사에서 영화의 제작비가 나오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에 착수하게 됩니다.

디자인과 학생들, 더 나아가 디자인 분야 종사자의 여러 고민 중 하나는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법에 대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과 장기간 동안 하나의 프로젝트를 팀으로 이어가는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특성상 의견을 나눌 때가 정말 많을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 분야에서의 피드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애니메이션이 ‘작가적’인 작업이라고 생각되기 쉬울 것 같은데, 사실은 조금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철학이나 개인적인 사유가 담긴 개인 작업, 작가들의 작업과 달리 산업디자인/시각디자인 분야는 클라이언트를 두고 작업을 하게 되죠.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에요. 분명 아트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상업적인 아트거든요. 클라이언트를 위한 컨셉 아트이고, 디즈니나 픽사 같은 큰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그 스튜디오의 스타일을 따라가야 하죠. 디즈니에 들어가고 싶으면 디즈니 스타일로 그려야 하는 거예요.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애니메이션 산업의 컨셉 아티스트 분들은 업계의 선호에 기반한 스타일을 가지고 계신 경우가 많아요. 애니메이션이 팀워크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듯이 피드백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물론 피드백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하죠. 컨셉아트는 어쨌든 개인의 해석이 담겨있기 때문에,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말로 전달이 잘 안 되기도 해요. 애니메이션 작업의 피드백에서는 이 느낌을 어떻게 전달, 수용, 조율해 나가는지가 관건인 것 같아요.

작업을 아카이빙 하는 일이 어떤 순간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주로 SNS에 아카이빙을 하고 있어요. 텀블러로 시작해서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있죠. 꾸준히 업로드를 하다 보면은 팔로우들이 많이 생기는데, 팔로워들 중에 저와 비슷한 아티스트 분들이 있었어요. 인연을 만들게 되어서 좋았죠. 더 좋았던 점은  제가 아카이빙을 하기 시작했을 때 대형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모든 리크루터도 SNS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분들도 SNS를 활용하면 인재를 찾기 수월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팔로우하고, 업로드하는 작업물을 확인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학생 때 하던 작업, 개인 작업물을 꾸준히 올리다 보니까 어느 순간 모든 큰 스튜디오의 채용 담당자들이 저를 팔로우를 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만났을 때 상대방이 이미 제 작업을 알고 있으니 대화하기 수월했어요. 예를 들어 ‘나 셀린 킴이야, 만나서 반가워’ 라고 말하면 ‘알아, 나 너 인스타그램 팔로우해’ 처럼 말이에요. 채용 담당자가 저의 성향과 하고 싶어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 안다는 건 큰 도움이 돼요.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원하는 스타일을 말하면, 리크루터가 그 스타일의 작업을 하는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소개하면서 연결이 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리고 이왕이면 작업용 소셜미디어를 따로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카이빙을 시작했을 때 아티스트의 소셜 미디어는 완전히 포트폴리오의 용도로만 사용되었어요. 요즘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작업 계정인 줄 알고 트위터를 팔로우했는데, 본인의 개인적인 의견이 너무 많이 올라와 부담을 느끼고 팔로우 취소를 한 적도 있었어요. SNS에 의견을 올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왕이면 작업 계정을 분리해서 아카이빙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SNS 피드, @celinkim218

직장에서의 업무와 개인 작업을 병행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은데요, 개인 작업과 회사에서의 작업에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시고 관리하는지 궁금해요.

커리어 초반 때는 왠지 해야 될 것 같아서 한 것도 있었어요. 학생 때 해오던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과제가 끝나면 뭐라도 하나 더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개인 작업을 했던 게 컸죠. 소셜미디어를 계속 업로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짬날 때마다 조금씩 그려서 ‘내 목소리를 보여줘야겠다’ 하던 게 습관으로 굳어지게 됐어요. 

억지로라도 하다보니 번아웃이 빨리 오더라고요. 개인 작업은 본인이 즐겨야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그 당시 〈스파이더맨〉 시리즈 영화가 새로 나왔는데, 스파이더맨 팬 아트를 그리면 팔로워가 엄청 늘었어요. 해시태그나 서칭,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는 거죠. 마찬가지로 새로운 스타워즈 영화의  팬아트를 그리면 팔로워가 엄청 늘죠. 영화를 보고 팬아트를 그리는 것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시작하게 됐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숙제처럼 변하게 됐어요. 새로운 영화를 보면 ‘팬아트를 그려야 하는데, 그래야지 팔로워가 늘 텐데’ 이렇게 생각하게 되니 정말 힘들어졌어요. 작업도 만족스럽게 되지 않았고요.

그 이후로는 굳이 시간을 정해서 작업을 하지는 않게 됐어요. 즐겁게, 그냥 내가 하고 싶을 때, 일이 끝났는데 ‘오늘은 에너지가 괜찮고 뭔가 새로운 것 좀 하고 싶다!’ 싶을 때 앉아서 개인 작업을 하게 됐죠.

보통 하루에 8시간씩 일하는데요, 저는 어쩌다 보니 제가 작업했던 모든 영화에 최소 2년씩 있었어요. 컨셉 아티스트 치고는 굉장히 긴 편이에요. 평균적으로는 1년 정도거든요. 애니메이션마다 스타일이 확고하다 보니, 똑같은 스타일을 하루에 8시간씩 2년을 하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정말 질려요. 그래서 요즘엔 일할 때 하는 스타일에 반하는 개인 작업을 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최근에는 〈씨 비스트〉에서 굉장히 현실적이고 자세한 배경 디자인을 했었는데, 개인 작업으로는 케이팝 팬아트를 그렸어요. 중세 시대 이런 거는 더이상 쳐다도 보기 싫고 그만 하고 싶으니까 일 끝나고 뭘 할까 하다가 케이팝을 그려야겠다 생각했죠. 그러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씨 비스트〉, 〈K-POP 팬아트〉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보면 쉴 틈 없이 바쁘고 알찬 삶을 살아오신 것 같아요. 이 모든 과정에 어떤 원동력 혹은 계획이 있었는지 궁금해져요.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해요. 하다 보니까 유학도 한 번에 붙어서 바로 가게 되고요. 농담 삼아 제 인생에는 여백이 없는 것 같다라고 하거든요.

결론적으로는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타이밍이 잘 맞았고, 그 타이밍에 저의 작업이 준비가 돼 있었어요.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사실은 전혀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저도 그런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처음에 드림웍스에서 연락이 왔을 때, 비자가 학생 비자밖에 없어서 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었어요. 정말 아쉬웠죠. 그 기회를 잊지 않고 졸업할 때 연결하려고 했어요. 당시에 연락을 주셨던 채용 담당자 분께 ‘그때 완성하지 못한 프로젝트를 마쳤고, 이제 졸업하니까 관심에 있으면 포트폴리오를 봐달라’고 연락을 했죠. 그렇게 바로 면접을 보고 드림웍스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어려움을 극복하는 셀린님만의 방법도 알고 싶어요

쉬어야 할 때 쉬어주는 게 정말 중요해요. 안 그러면 번아웃이 올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전 휴가를 쓰고 싶을 때 눈치껏 휴가를 써요. 왜냐하면 회사가 너무 바쁘고 힘들 때는 (휴가를 쓰기) 좀 미안해지는 상황이 오니까요. 그래서 일단 물어보고, 제가 보기에 괜찮은 선에서는 좀 쉬려고 하는 편이에요.

제일 맘 편히 휴가를 쓸 수 있는 타이밍은 한 영화에서 다음 영화로 넘어갈 때예요.최근에도 영화 하나를 마무리했는데, 다음 영화에서 저보고 빨리 와달라고 부르긴 했어요. 그래도 ‘두 달만 놀다가 갈게, 그렇지 않으면 난 번아웃이 와서 너네 영화에서 100%를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나한테는 중요한 부분이야’라고 답했죠. 후에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그때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스스로 흐름이 끊기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연말을 제외하고는 휴가를 엄청 자주 쓰는 편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휴가 때는 무엇을 하시나요? 휴가를 보냈던 이야기도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요.

여행 가는 걸 좋아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여행을 전혀 못 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휴가 때 친구, 가족을 보러 한국을 갔었어요. 한국은 한국만의 편안함이 있는데요, 놀기에는 최고의 나라라고 생각해요. 또 미국은 칼로리는 높아도 음식이 그렇게 맛있지 않은데, 우리나라 음식은 먹으면 살도 안 찌면서 맛있어요. 걸어다니기도 정말 좋아요. 이걸 미국 와서 알았어요. LA는 온통 집들밖에 없어서 산책하거나 외출해도 구경할 곳이 별로 없거든요. 한국에 살 때는 걸어 다니는 걸 정말 싫어해서 매번 택시를 탔었는데, 이제는 한국 가면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패딩 걸치고 걸어 다녀요. 주변만 잠깐 걸어도 볼 것도 너무 많고, 안전하기도 하고, 소소한 재미가 있잖아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실제로도 한국적인 작업을 많이 하시고 계시고요.

정말 신기한 게, 유학을 왔을 때는 미국 사람처럼 그리고 싶었거든요. 픽사처럼 그리고 싶고 디즈니처럼 그리고 싶고 드림웍스처럼 그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거기에 일했던 사람들이랑 다 일해봤어요. 이제는 미국 사람들이 원하는 스타일로 그릴 수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라구요. 모두가 그렇게 그리니까 재미없는 거예요. 미국에서 나오는 영화들은 아무리 다른 문화권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미국스러워요. 디즈니에서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디즈니스러운 해석을 하는 것처럼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여기에 와서 한국적인 것을 계속 찾게 되더라고요. 정말 비싼 디자이너의 모던 한복을 사는 게 꿈이 되고 , SNS에서 한국적인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도 팔로우하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스스로도 이왕 그릴 거면 한국적인 것, 한국 캐릭터를 그리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한국적 색채가 담긴 작업

현 시점에서 셀린님의 다음 목표 및 꿈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 꿈이 만화가였는데요, 애니메이션 회사를 은퇴하게 되면, 나만의 이야기가 들어간 그래픽 노블 한 권을 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노블은 한국적이었으면 좋겠어요. 미국이나 일본 모두 만화책을 보면 자신만의 문화와 스토리를 많이 쓰는데, 그런 것들이 부러웠어요. 유명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나올 수 밖에 없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아직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토리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만의 이야기, 한국적인 이야기가 외국어로 번역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어요. 나중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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